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공선사 Jul 19.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6(4.법신비상분4)

자기 자신을 잘 보는 깊이만큼 타인도 잘 보게 된다.

수보리 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 관여래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 觀如來)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설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응당 32상으로써 여래를 관할 수 없습니다.


수보리존자가 여래의 말씀을 비로소 이해하고 뜨끔하여 자기가 순간 생각이 좁았고 여래의 질문을 잘못 이해하여 받아들인 것을 알고 얼른 바른 대답을 한다.

우리들이 타인을 비롯한 모든 타 존재들을 보는 한계는 어디서 정해지는가?


그것은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폭과 깊이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타 존재에 대한 통찰이 뛰어난 사람은 그만큼 자기 자신도 잘 보게 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잘 보는 만큼 타인도 잘 보게 되는 법(法)이다.


그래서 자기의 본래 모습인 무아(無我)에 통달한 도인(道人)은 모든 타 존재들을 올바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불지(佛智)의 한 단면이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는가?


그것은 나 안에 모든 타 존재들이 모두 들어가 있고, 또 타 존재들 역시 모두에게 나 자신의 모습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나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그래서 나 자신이기도 하고, 나 안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나 자신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서양과 타 종교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사실들을 완전히 망각하는 바람에 크나큰 오류를 범하고 있고, 역사에서 그런 끔찍한 악행들이 스스럼없이 저질러져 온 것이다.


예를 들어 나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해 보자. 늘 이야기하는 말이다.


나 안에 있는 심장도 나 자신이고, 나 안에 있는 분뇨도 나 자신이고, 생각도 나 자신이고, 보이지 않는 마음도 나 자신이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유독 나 자신이 아닌가?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하나님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나'라는 것은 아예 없고 '나'라는 존재는 허깨비라고 해야 앞뒤가 맞게 된다.


나 안에 하나님이 있다면 나는 곧 하나님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들의 말은 다르니 거짓말이 되는 것이고, '나'라는 것이 허깨비라면 천국에 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또한 거짓말이 된다.


이래도 거짓말이고 저래도 거짓말이니 서양과 그들 종교는 정신분열병을 인류에게 안겨준 것이다. 그래서 믿음 따로, 행동 따로가 되는 것이다.


이 모순이 어디서 생긴 것인가?


바로 자기의 상(相)을 자기의 본래모습 내지 전부로 삼아서 생긴 일이다.

다행히도 동양에는 석가모니불 또는 그 이전에도 성현(聖賢)들이 계셔서 일깨워주셨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자신은 본래 여래이지만 색상(色相)을 자기 자신으로 삼아서 이런 고통을 초래하고 있으니, 본래 고통이 없는 자기 여래의 모습을 찾아라고 하시는 가르침이 우리 멋대로의 생각이 가지는 망상과 모순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수보리존자가 32상으로써 여래를 관할 수 없다고 올바른 대답을 하는데, 이것을 알기까지가 얼마나 힘든가?


올바른 윤리도덕의식조차 하나 가지고 제대로 실천하기도 힘든 것이 상(相)이거늘, 어찌 감히 그것으로써 자타(自他)의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이전 03화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6(3.법신비상분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