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유위법은 상을 취하고 업을 낳으므로 여여하게 금강경을 설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일체의 함이 있는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갯불과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금강경을 연설할 때 상(相)을 취하지 말고, 여여하게 움직이지 말고 하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
유위법(有爲法)이란 업(業)을 낳는 제반행위를 말하는데, 그 업은 상(相)에 붙어있으므로 결국 상(相)을 취하면 업(業)만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위법이란 자기 생각과 마음과 말과 행위에 자기 존재를 푹 빠뜨리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자기가 스스로 자기 존재를 현상에 물들여 때를 묻히는 것이다.
몽(夢) 같다는 것은 이 몸과 윤회하는 영혼을 자기로 삼아서 하는 행(行)이기 때문이다. 죽고 나면 자기라는 것이 없게 된다. 영혼이 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죽고 난 후의 영혼으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은 살았을 때의 의식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살아있을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환(幻)과 같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자기로 삼아서 하는 행(行)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사라지고 나면 자기라는 것이 없게 된다. 이전의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결국은 항상 변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포(泡)와 같다는 것은 자기 희망을 자기로 삼아서 하는 행(行)이기 때문이다.
희망이 사라지고 나면 자기라는 것이 없게 된다. 희망은 자기 존재를 지탱하기 위해서 스스로 만드는 보루이지만 그 희망은 탐진치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거품처럼 꺼지고 만다.
영(影)과 같다는 것은 자기가 한 행위의 결과를 자기로 삼는 행(行)이기 때문이다.
결과가 사라지면 자기라는 것이 없게 된다. 결국은 자기 자신과 아무 관계없이 되는 결과는 자기의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로(露)와 같다는 것은 자기가 머무는 곳을 자기로 삼는 행(行)이기 때문이다.
머무는 곳이 사라지면 자기라는 것이 없게 된다. 머물고자 하면 머무는 곳에 자기 존재가 사로잡히고 떠나고자 하면 갈 곳이 따로 없게 된다.
전(電)과 같다는 것은 찰나를 영원으로 착각하고 그 찰나를 자기로 삼는 행(行)이기 때문이다.
찰나가 지나가면 자기라는 것이 없게 된다. 찰나에 집착하면 영원이 사라지고, 영원에 집착하면 찰나가 사라지니 결국 허무함만 남게 된다.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이 이와 같으니, 상(相)을 취하지 말고 여여하게 움직이지 말고 금강경을 연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체 유위법을 이와 같이 잘 관하여 착각하지 말고, 그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이나 자기 소유로 여기지 말고, 다만 보살심(菩薩心)을 잘 발하여 금강경 등 사구게를 올바로 연설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