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마음을 청정하고 밝게 가꾸어가면서 금강경을 수지독송해야 한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그 얻는 공덕은 내가 여러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 내지 어떠한 수를 헤어리는 것과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석가모니불께서 드디어 앞으로 오는 말세(末世)라는 말씀을 하신다.
불교의 상징이 둥근 원(圓)이라는 표상에서 보듯이 시간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되어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므로 말세라는 말씀을 시간으로 받아들이면 진리인 불법(佛法)에 한참 어긋나게 된다.
앞으로 오는 말세(末世)라는 뜻은 중생으로 지내는 우리 존재의 상태가 철저히 상(相)과 그에 따른 인식으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즉, 번뇌망상을 주된 의식으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옛날 옛적이 말세일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현재가 말세일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중이 말세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미 말세라는 존재의 상태가 사라졌으므로(이런 말을 하니 나도 아직 중생이다) 따로 말세라는 시간이 없어졌다.
그런 말세인 상태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일지라도 이 금강경을 능히 수지독송하면 그 공덕이 무량한 부처님을 무한한 시간 동안 공양한 석가모니불의 공덕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처해있는 말세(末世)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위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인데, '능(能)히'라는 그 단서가 또 붙는다.
어떻게 하는 것이 금강경을 능히 수지독송하는 것인가?
능(能)하다는 것은 걸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걸리면 어린 아기가 처음 걸음걸이하듯이 능하지 못하고 서툰 것이다.
그럼 무엇에 걸리는 것을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의 사상(四相)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능하다는 것은 바로 상(相)에 따른 의식(意識)을 넘어서서 이 금강경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어떤 의식인가?
자기의 본래면목은 부처이고, 그에 대한 철저하고도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그 인식을 근본으로 하여 자기 마음을 청정하고 밝게 가꾸어가는 것으로서 이 금강경을 수지독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강경을 능히 수지독송하는 공덕과 무량한 부처님을 무한한 시간 동안 공양한 석가모니불의 공덕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다만 석가모니불의 대자비심이 느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