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불께서는 금강경의 뜻을 어떻게든 알 수 있다고 하신다.
수보리야, 마땅히 알라. 이 경은 뜻도 가히 생각할 수도 없으며 과보도 역시 생각할 수 없느니라
이 경을 듣고 얻는 과보를 모두 말한다면 어떤 사람이 마음이 광란하고 의심하고 불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경의 뜻과 그 과보가 생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일러주신다.
생각으로 알 수 없는 것을 생각으로 알려고 하면 어떤 현상이 생기는가?
그것을 자기 생각의 틀에 끼워 맞추거나 아니면 갑갑해하기 마련이다.
머리 좋은 사람은 이렇게 가공(架空)의 망상(妄想)을 만들어 스스로 갑갑함을 해소시키지만, 대다수 사람은 골치 아프니까 그렇지 못하고 덮어버리고 무시하게 된다. 그래서 머리가 좋을수록 그에 비례하여 망상을 크게 가지게 되고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된다.
그러면 생각으로 알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석가모니불께서 단 한마디 설법을 하실 필요가 없었을 터인데, 어떻게든 알 수 있으니까 이런 경들을 설하시는 것 아닌가?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상대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상대해야 올바른 결과를 낳게 되는 법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상대하면 어긋나서 효과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귀신을 물질을 동원하여 상대해 봐야 무용지물이다. 귀신은 자기 영혼으로 상대해야 한다. 그때 물질은 자기 영혼이 동원하는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귀신을 물질로 상대하니까 귀신이 들렸다고 사람의 몸을 두들겨 패서 죽거나 다치는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 귀신을 상대하는데 도대체 왜 물질을 동원하나?
진리는 생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진리를 보는 안목을 갖추게 되면 진리는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진리는 생각으로 알 수 없으니 언어로 표현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당연히 학교에서처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진리를 보는 안목을 갖춘 자기 자신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향해가도록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은 전혀 소용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진리를 보는 안목을 갖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생각은 단서 내지 실마리 역할을 한다.
그것이 바로 화두(話頭)아닌가? 이 뭐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