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
김백지라는 보편적 희귀종의 주요 서식지는 시골입니다.
'세상 가장 아름답다 여기거나', '너무나 사랑하는'과 같은 곳에 살기 좋아하고,
높은 산 오지마을이나 바다 앞이라는 영혼의 생태사슬이 잘 보전되어 있는 시골,
느려도 괜찮은 사회에서 혼자의 시간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말해주는
백로가 공통적으로 사는 '리'단위를 벗어나지 않았어요.
손가락을 꼽아야 헷갈리지 않고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의 이 시골, 저 시골
원 없이 많이도 살아보았네요. 여전히 살아보고 싶은 시골들이 있지만요.
시베리아횡단열차 역세권에서 주민할인 가능지역, 오키나와 샤먼친구가 내 영혼의 친구가 있는 게 확실한데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 바이칼 산 1번지라던가 아르헨티나 탱고학교 옆집, 쥘베른의 소설에 나오는 그린란드 어디에 있다는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플래시전문점, 아무르호랑이가 살아서 함부로 난개발 못할 산동네, 고래가 아기를 낳으러 내려오는 미역이 맛있다는 동해바다 관광객이 신기한 동네에서 고래랑 같은 미역으로 산후조리해 보기, 이번 생으론 모자란 이유가 제가 갓 태어난 영혼이라서 그런 다했어요. 오래된 영혼들은 이제 더 안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는데 몇 번 안태 어나 본 이 영혼은 앞으로 태어날 계획이 창창합니다.
산이냐 바다냐 시골이 다 시골이지. 이 정도 시골시골을 했으니 시골살이에 익숙하겠구나
여기 실 수도 있겠지만 같은 시골도 시절마다 새로운 것은 내가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돌아보니 알 수 있게 되어요.
하염없이 시골에서 살아온 김백지에게 전혀 새로운 시골살이가 시작되고 있어요.
이제와 생각해 보니 시골살이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시골살이는 '나는 자연인이다'에 가까웠어요. 자유로 운듯하지만 고립된 생활을 즐겼어요.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면서 작은 배안에 사는 사람, 우주를 유영하는 듯하지만 우주선 안에 사는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와요.
집과 산책길, 집과 바다, 집과 산, 집과 카페 때로는 집과 작은 책방이었네요. 나와 바다, 나와 산, 나와 강아지, 결이 맞는 이웃 하나와 멀리 그리운 친구가 내가 사는 '나와 장소'에 함께 사는 유일한 동반자였어요.
유심히 들여다보니 두 번의 전 단계가 있었네요.
하나는 리동지와 처음 만나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의 기억이에요. 누군가 나와 함께 산다라는 인식이 처음이었거든요. 세상에나 그랬었네요.
두 번째의 성장은 담양에서의 행복한 기억이에요. 늘 그렇듯이 평생 살 생각을 했어요( 함평에 오면서는 인생이 어떻게 될는지 우린 모른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이렇게 빨리 갑작스레 함평으로 이사할지 까맣게 모른 채 함께 살아가고픈 아름다운 친구들을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공동체처럼 느껴졌어요. 담양에서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를 여의고, 작은 가게를 하고, 독서모임과 기후위기행동을 하는 내내 함께 해준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요. 같이 모여 김장을 하고, 연잎찰밥을 만들고, 목욕을 함께 다니거나, 손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을 함께하며 직접 구운 디저트를 도시락에 싸 오는 사람들. 아껴온 비밀스러운 계곡에 함께 가고 싶어 하고, 서로의 친구들을 소개해주며 함께하고픈 사람들과 함께 담양에서 나이 들어갈 줄 알았어요. 아쉬워요. 그리워해요.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알게 해 주어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제 마음속에 담기는 사람들이 늘어가요.
새로운 생활은 시작되고 있어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두 번째 마음을 배워가고 있어요. 처음 살아보는 마을도 아닌데 처음 만나는 마을살이란 바로 공동체로서의 삶이에요. 산남리 노인회관에 시아버지를 모셔다 드리면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전입신고를 하니 이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안내를 받으라 하여 손에 뭐라도 들고 찾아간 노인회관은 따뜻하고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곳이었어요. 환대해 주시며 밥도 같이 먹자 해주시고 은행도 까주셨어요. 그 뒤로도 팥죽이 감사해서 팥죽냄비에 늙은 호박전을 채워다 드리면 다음에 호박죽에 어제 담갔다는 쪽쪽 찢은 김치를 주셔요. 내가 살았던 그 여러 마을마다 노인회관이 있었을 텐데 우리 시아버지 덕분에 이 좋은 곳에 이 고운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게 되었어요.
이렇게 살펴보니 우리 집과 이웃이지만 경계에 부딪힘이 있어 서먹서먹하던 분이 이곳에선 할머니들 보살펴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해주시고 반짝거리는 부엌으로 가꿔주고 계셨어요. 억척스러워 보이던 분인데 그 많은 밭을 돌보는 사이 함께 살아가는 일까지 챙기고 계셨다니 모르던 것을 알게 되니 다르게 보입니다. 경계에서 만나던 사람과 공유지에서 만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도 다르네요.
시아버지가 매일같이 머물며 식사도 드시고 오시는 노인회관이라 그런지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지 저도 이장님과 그분처럼 노인회관에 와서 식사와 간식도 해드리고 싶은데 솜씨가 없으니 그래도 괜찮을까 부끄러운 마음도 있어요. 갑자기 대단히 잘할 수는 없겠지만 차근차근 천천히.
제 마음에 공유지가 자라고 있나 봐요. 이 마음 안에 마을이 생겨나고 있어요.
마을어귀숲이나 바닷가, 나무그늘처럼 노인회관도 나의 생활에 들어왔어요. 독백 같던 내 삶과 언어들에 사람들이 늘어가요. 장미처럼 가꾸던 내 마음이 작은 정원이 되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