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e 수 Feb 24. 2024

브라질의 한 여름, 벽틈 사이에 핀 들꽃

브라질에도 골목대장이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 1월 한여름.


 한국이라면 여름의 상징인 매미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겠지만 이곳 상파울루는 매미 소리를 듣기 어렵다. 여름마다 매미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이다. 대신 여름 철새의 지저귐으로 대체 된다. 올해 브라질의 여름은 정말 덥다. 엘니뇨 때문이라고 그러던데 오후만 되면 그냥 수박 한 조각을 한 껏 베어 물어 먹고 싶다. 


 작년 여름 벽 틈 사이에 한 식물이 자리 잡았다. 한 달 동안은 뽑기도 귀찮아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2달 정도가 되자 하얀색 들꽃이 피기 시작했다. 한 두 개씩 피더니 올해 여름에는 아주 무성히 자라 비좁은 벽 틈 사이로 수십 개의 꽃을 피웠다. 이제 우리 집 주택 벽 틈 사이에는 여름마다 하얀색 들꽃이 핀다.


 그 꽃을 볼 때마다 ‘이쁜 곳 다 놔두고 왜 여기 벽 틈에 자리를 잡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 줘서 볼 때마다 고맙고 기뻤다.


 한 번도 그 들꽃을 꺾어 집 안에 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식탁에 데코용 트레이를 놓으며 꽃장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름마다 우리 집 벽틈에 피던 들꽃을 집 안으로 들였다.

줄기를 자르면 며칠 내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화병에서 일주일 넘게 생생하고 또 봉오리까지 활짝 핀다. 왜 그동안 꽃은 가게에서 사 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이쁜 들꽃이 집 앞에 있는데......


 그런데 이 글을 쓴 후 딱 3일 뒤, 우리가 사는 골목대장 브라질 할아버지께서 우리와 상의도 없이 그 들꽃을 삽으로 긁어 내 없애 버렸다. 영상번역을 할 때는 자막을 삽입하는 시간이 중요해 이어폰을 끼고 대사를 듣는데 알고 보니 내가 일하는 그 사이에 할아버지께서 단숨에 해치워 버린 것이었다. 대문을 여니 옆집 할머니가 길가에 앉아 계셨다. 얘기를 하다 보니 꽃이 제거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할머니도 말씀하시며 왜 그 꽃을 긁어내냐며 아쉬워했다. 


  이제야 겨우 눈길을 주기 시작했는 데, 어느 날 보니 다른 사람 손에 한 번에 꺾여 버리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너희들이 있다는 걸 빨리 알아차렸다면 보고 기억하고 고마움을 느낄 순간이 많았을 텐데.



어쩌다 마지막 꽃이 되어 버린 들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