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데어
서사는 사건의 재현 혹은 연속이다. 인간은 사건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사건을 반복 재생한다. 따라서 삶은 사건의 연속이고, 재현의 연속이며, 그 자체로 서사이다. 사람은 삶 속에서 서사를 만들며 살아가게 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서사가 곧 사건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사건과 서사는 구분되어야 하며, 이 글에서는 서사와 사건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자 한다. 사건은 실제 일어난 것, 그러므로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서사는 이를 언어화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사건의 순간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존재한다.
이러한 서사를 구성하는 과정에는 서술자의 의도가 개입한다. 어떤 사건이 서사 속으로 포함되고 강조될지는 서사를 만드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어떤 사건은 서사 자체를 이끌어가는 골조인 반면, 어떤 사건은 서사에 덧붙여져 이를 추가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갖는다. 어떤 사건들은 그저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는 반면 어떤 사건들은 인과 관계를 갖기도 한다. 이러한 사건의 선택과 배열을 통해, 서사는 서술자의 의도를 반영한 특별한 목적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5·18 민주화 운동을 보자. 위르겐 한츠페터의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속 광주에는 외국인 기자인 한츠페터를 환영하는 사람들, 트럭과 버스에 올라타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후 그가 광주를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그는 태극기로 감싸져 있는 수십 개의 관, 관을 붙들고 우는 여성, 관이 모자라 염도 하지 못한 시신들을 찍었다. 그가 찍은 광주의 영상에는 전두환의 취임식 장면이 뒤이어 나온다. 그 두 영상을 같이 배치함으로써 한츠페터는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의 원인을 명확히 지목한다. 이 독재자는 학살자다. 그러므로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면 그의 악행을 알아야만 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고발이다.
반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정치적, 사회적 담론을 직접 제시하지는 않는다. 만약 독자가 이 책을 읽고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해 정치적으로 행동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면 이는 간접적인 영향일 것이다. 한강은 당시의 광주를 겪은 개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총에 맞아 사망한 중학생, 아들을 잃은 어머니, 당시의 광주에 대해 90년대와 00년대에 각각 증언을 요청받은 두 인물. 소설은 독자에게 이해와 연민을 바란다. 광주에서 일어난 죽음들이 독자와 무관한 일이 되지 않기를, 그래서 독자가 이입하고 같이 눈물 흘릴 수 있는 일이 되기를 요구한다.
이 두 작품의 저자는 같은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여 각기 다른 서사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각 서사는 서로 다른 독자를 겨냥하고 있다.
위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서사는 본질적으로 특정한 독자와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어떤 서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된다. 80년대 대학들의 동아리방에서 한츠페터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우리가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소설을 여전히 읽고 눈물 흘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광주 항쟁이 여전히 계속되는, 이야기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건이 '진실된' 마무리를 요청할 때가 있다. 재판이 끝나고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되었다고 해서 끝난 일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책임자, 현장 군인 등 이 사건을 직시하지 않고, 책임을 부정하는 한 이 사건은 종결되지 않는다. 사건이 당사자를 넘어 공동체의 문제가 되어야 할 때 서사는 그 힘을 발휘한다. 서사는 사람들이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사건을 특별히 여기게 한다. 특히 재난이 일어났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이 재난을 해결하고자 한다. 흔히 사용되는 단어를 인용하자면,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요구한다. 그러려면 인력이 필요하다. 사건에 연관된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사건 바깥의 사람들이 움직이게 하려면, 이 목적에 동의하게 하려면, 이들이 이입하게 하려면, 다시 말해 사람들의 정동을 건드리려면 서사가 필요하다. 어떤 서사는 분노에 불을 댕기고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그래서 서술자는 단어를 선택하고 사건의 순서를 구성해 사람들 앞에 펼쳐놓는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는 ‘꽃’이 되고 바다는 ‘차갑고 검고 무정하게 아가리를 벌린다’.
이런저런 비유는 늘 오류 가능성을 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비유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다. ‘채 못다 핀 꽃’과 같은 표현은 주로 나이가 어린 사람을 지칭하므로, 나이가 많은 사망자는 이러한 호명에서 제외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비유를 통해 강조하려는 가치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의 생명이 다른 이들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가? 그렇다면 건조한 단어들은 어떨까? ‘사망했다’와 ‘살해당했다’는 똑같이 죽음을 말하지만, 후자는 살해자의 존재를 암시한다. 재현, 즉 사건을 언어화하는 것은 늘 이러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현’은 잘못되었는가? 서사는 사건을 왜곡하고 이용하기만 할 뿐인가? 오카 마리는 『기억⋅서사』에서 재현의 가능성과 리얼리즘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재현된 사건을 보는 사람들은 진실된 이야기를 원한다. 이야기가 충격적일 때 더욱 그러하다. 수전 손택이 “고통을 둘러싼 도상학은 기나긴 족보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듯이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거짓 없는 강렬한 이미지에 끌리는 듯하다.[1] 자연스럽게 미술과 철학,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에서는 사실주의 사조가 등장했다. 사실주의(realism)는 객관적인 진실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통상 ‘리얼하다’라고 부르는 이야기가 실제로 진실인가? 『기억⋅서사』에서 든 예시를 언급해 보자면, 관객들은 〈쥬라기 공원〉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대해 동일하게 ‘리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현실에서 마주한 적도 없는 공룡에 대해 어떻게 리얼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경험하지 못한 전쟁에 대해 어떻게 리얼하다고 할 수 있나?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아무리 자료조사를 한들 육식공룡에게서 도망치고 포격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달리는 기분을 관객들이 ‘진실로’ 이해하고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나? 우리가 진짜 같다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영화를 우리의 직접 경험에 빗대어서 진짜 같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혹은 간접적인 경험을 떠올리며 진짜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 저런 상황에서는 정말로 저러겠지.”
조금 더 심정적으로 가까운 곳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이들이 입은 피해를 여성의 고통으로 바라보았다. ‘위안부’ 피해자는 ‘꽃다운 소녀’, ‘피해자 할머니’라고 불렸다. 곳곳에는 ‘소녀’상이 세워졌다. 또한 이들이 입은 피해는 “피지배 민족 여성에 대한 지배 민족의 성적 수탈”[2]이라고, 민족주의적 시각에 기반해 해석되었다. 이에 대응해 김정란은 일본의 일차적 가해뿐만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를 멸시하고 침묵시킨 고국의 2차 가해를 비판하기도 했다.[3] 1990년대 들어 국가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1991년 고(故) 김학순 인권운동가가 공개적으로 증언하기 이전까지, 생존자들은 가부장적인 사회와, 그들 자신이 받은 상처와 수치심 때문에 이에 관해 기억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김정란과 같이 그들에게 피해자로서의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피해자 정체성만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등장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에도 불구하고 증언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해결을 촉구하려는 이들을 존중하라는 요구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할머니’라는 호칭보다 인권운동가, 여성운동가라는 호칭으로 불러달라는 요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진짜 같은 재현을 찾았다.
그렇다면 사건의 목격자, 방관자가 아니라 사건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라면 사건을 올바르게 ‘재현’할 수 있는가? 『기억⋅서사』에서는 다시 일본군 ‘위안부’의 예시를 가져온다. 오카 마리는 “‘나는 여자로서의 기쁨을 알지 못한다’라고 이야기한 김학순 할머니”를 언급하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뿐더러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폭력적인 ‘사건’의 그 폭력성을 입증하는 그 말이 ‘여자로서의 기쁨’ 따위와 같이 진부하게 사용된 판에 박한 상투어구였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거리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4] 우리는 당사자에 대해 그가 그 사건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그가 그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할 것이라 기대한다. 가장 정확한 전달, 가장 설득력 있는 서사를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모든 진술이 그러하듯이, 그들이 알고 있는 단어, 알고 있는 서사에 한정된다. 당사자이자 서술자인 그는 자신이 살아온 현실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사건이 여러 당사자를 가질 때, 이들의 경험은 모두 다르고, 그 사건을 설명하는 서사 역시 다르다. 여러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동일한 이름 아래 각각 다른 사건을 경험했다. 생존자 개인이 재구성한 서사 역시 다르다. 어떤 생존자는 이것을 전시 여성 성폭력의 맥락에서, 어떤 생존자는 개인적인 ‘나’에 대한 가해의 맥락에서, 어떤 생존자는 일제강점기하 인권 침해의 맥락에서 바라본다.
당사자마저 정확히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맞닥뜨렸을 때, 어떤 재현이 윤리적인지 우리는 어떻게 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재현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다시 서술자에게 돌아와 보자. 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기였다. 이태원 참사 2주기도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재난 이후 남겨진 유가족은 당연하게도 앞서 든 예시와 비슷한 서사화를 시도한다. 사건을 소화하고, 사건으로 인해 만들어진 감정을 말하려고 하고, 사건에 맥락을 부여하여 서사화를 시도하여, 그 서사의 완결을 짓고자 한다. 그 슬픔과 억울함과 분노와 쏟아지는 감정에 휩쓸리면서 이를 토해내려 한다. 아니, 오히려 온갖 감정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애쓴다.
이들은 사건에 너무나 가까이 있다. 해결이든, 해명이든, 그 무엇이든 가장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건을 설명하는 주역이 되는 것은 일견 마땅해 보인다. 동시에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사건을 설명하려고 드는 것은 부당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유가족의 설명이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유가족이 늘 그 사건의 맥락을 가장 잘 이해하고 언어화한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유가족의 언어는 맹렬한 만큼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말 그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가족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들이 가장 옳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참사와 그 후 국가 폭력의 상황에서 개인으로서 대응하는 유가족의 서사가 너무 쉽게 묻히기 때문이다. 어떤 서사는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강력하고, 어떤 서사는 그 앞에서 너무 무력하기 때문에. 재난본부의 ‘공식’ 발표 앞에 개인의 서사가 덮이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그러므로 유가족의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공론이다.
애초에 사건은 말로 설명될 수 없다. 글의 첫머리에서 필자는 사건과 서사를 구분하겠다고 썼다. 사건은 완벽히 재현될 수 없다. 심지어 당사자마저 사건을 정확하게 언어화할 수는 없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전의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강물이 흘러가듯이 시간 역시 흘러가, 이전의 사람과 이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된다. 사건이 일어난 순간의 당사자와 사건이 일어난 후의 당사자는 다른 사람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사건을 정확히 서술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당사자 역시 사건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언어는 사건을 비껴가며 그 주위를 맴돈다. 이러한 우회는 필연적이다.
우리가 원하는 ‘재현’은 흔히 쓰이는 의미의 재현과는 다르다. 사건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다시 불러오는 것이다. 우리가 재현하는 이유는,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을 정확히 말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저 침묵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일그러지고 부정확하더라도 일단 내뱉어서, 적어도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재현의 의미는 그것에 있다. 기억하지 않으면 그 사건이 반복될까 봐, 불분명하고 뿌연 기억이더라도 기억하지 않으면 사람이 또 사라지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이 길이 얼마나 돌아가는 길이든 가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1]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64
[2] 이보라, 최민지. “②민족주의 관점 밖 ‘위안부 연구’ 외면한 운동…비판·성찰 사라져.” 경향신문. 2020.6.14,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614210900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3] 김정란.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나타난 민족주의적 경향」. 철학과 현실, 2006, 108-118.
[4] 오카 마리. 『기억⋅서사』. 교유서가, 2024, 61.
참고문헌
김정란.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나타난 민족주의적 경향」. 철학과 현실, 2006, 108-118.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오카 마리. 『기억⋅서사』. 교유서가, 2024
이보라, 최민지. “②민족주의 관점 밖 ‘위안부 연구’ 외면한 운동…비판·성찰 사라져.” 경향신문. 2020.6.14,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614210900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한강. 『소년이 온다』. 창작과비평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