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고1 칼럼이 마무리 단계일 즈음 새 학년 업무 발표가 났다. 3학년은 이 년이나 했고 한 해 정도 쉬어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죠슈아가 올해 고2이니 같이 2학년 담임을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는데 1학년 담임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래, 담임은 뭐니 뭐니 해도 1학년이지. 선생님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아직까지 반신반의 정도는 해주는 순진한 꼬맹이들. 물론 손도 많이 가고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어야 해서 좀 번거롭다. 하지만 큰 기대 안 하고 '나는 보모다' 각오하고 덤비면 또 나름 새 도화지에 그림 그리는 것 같은 맛이 있는 것이 1학년이다.
수학선생으로 가르치기에 가장 재미없는 게 1학년 수학이기는 하다. 사실 수학이라기보다는 산수에 가까운 내용들로 가득한 기본교육과정의 <수학>이라는 책의 특성상 뭐 심오할 껀덕지가 없는. 반면 같은 이유로,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심리적으로 부담 한가득인 종합선물세트 같다. 이 이후에 배우는 <수학1>과 <수학2>, 이어지는 <미적분>이야말로 진정한 고등수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데 반해서 말이다.
미리 진도를 빼고 와야 어느 정도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고등수학의 특성 때문에 고1 수학은 대부분 훑어라도 보고 오기 마련이다. 때문에 교사들은 학교 수업의 기능을 다시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수준별 수업을 할 수 없는 시대적 분위기상 일반고 한 교실에는 실력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학생들이 섞여 있어 어디에 타깃을 두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러나 수업을 하다 보니 '아는 듯 아는 게 아닌' 상태의 아이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학원 수업을 상상해 보자. 학교는 일주일에 네 시간 정도 수학수업을 하지만 학원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간다. 대신 두세 시간은 수업을 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중 개념 강의는 삼십 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다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유형의 문제들의 풀이방법을 보여주고 익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문제를 풀면서도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긴 수학의 여정 중 그 내용이 어떤 의미로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중요하다고 별표 세 개 친 그 정리는 얼마나 멋지게 증명되는지 같은 것은 학원에서 알려주지 않는다. 그걸 몰라도 되어서가 아니라 그런 건 학교에서 배울거라고 믿기 때문에.
결국 나는 학교수업의 전통적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학원들이 치고 들어오는데 당황한 나머지 잠시 길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 아이들은 영원히 그 중요한 내용을 배우지 못한 채 학교를 졸업할 터였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학교 다닐 때 우리 수학 선생님은 이런 건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그때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나도 수포자가 되지 않고 재미있게 수학을 공부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푸념을 유튜브 수학동영상 같은데 댓글로 남기며 내 얼굴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작한다.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이야기. 그간 수업시간에 진도 나가다 말고 샛길로 새어나가 혼자 신나게 떠들어댔던 그 썰들이다. 거기에는 중학시절 나의 썸남 얘기도 있고 어린 시절 인상 깊게 본 영화얘기도 있다. 1학년 수업을 이어갈 올 일 년간그때그때 수학 진도에 맞추어 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수준은 딱 고1. 그러니 고1 전후로 수학을 포기했던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고1 친구들이라면 브런치 앱을 다운로드하고 매거진 구독을 하면 새 글이 올라올 때마다 알림이 뜰 테니 한 번씩 들어와 읽으면 학교 공부를 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