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불안한 이유

청춘 9

by 박범진 작가

나이가 들수록 불안한 이유는 세상의 변화를 싫어하는 내 마음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세상의 변화가 인생의 끝으로 치닫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여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름 증권회사에서 부지점장까지 지내면서 세상의 수많은 변화에 맞섰다. 때로는 손해를 보고 때로는 이익을 보며 그럭저럭 변화에 적응하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학교로 올 수 있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젠 몸도 마음도 변화를 거부하며 화석처럼 굳어져만 간다.

며칠 전 용돈을 벌 요량으로 무심코 주식을 매수하였는데 몇십만 원의 손해를 봤다. 예전 같으면 그럴 수도 있다며 툴툴 털고 일어섰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몇십만 원의 손해가 자꾸 나를 불안과 짜증의 늪으로 끌고 가고 있다.

왜 그럴까? 나이 오십을 넘기니 내 마음은 더 이상 인생의 후퇴를 용납하기 싫은가 보다. 사실 주식은 잠깐 떨어져도 다시 기다리면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 기다림을 견뎌야 하는 나는 시간의 흐름에 점점 민감해지고 조급해져만 간다.

유튜브에서 젊은 친구들이 투자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영상을 보았다. 나도 한때 저랬었는데 하며 지나간 내 모습을 회상한다. 그들은 실패가 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벌써 남은 시간에 대한 끝이 불안하여 현실과 타협만 하려고 한다. 세상은 끝없이 변하는데 나만 제자리에 서서 버티고 있으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먼저 살다 간 조상들은 인생을 물 흘러가듯이 무심하게 보내라고 조언한다.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된다.

지나간 시간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변한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이다. 특히 인구통계는 미래의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내가 태어난 70년 초반에는 한 해 100만 명 정도가 태어났고 대학의 학령인구 변화를 가져온 2002년에는 50만 명 정도가 태어났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2022년에는 25만 명 정도가 태어났다. 살아있는 동안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닥칠 거로 생각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친구들은 은퇴를 앞둔 분들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그 친구들은 불안을 넘어 안정기에 접어든 그분들을 동경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안정적인 젊음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세상의 변화에 끝없이 몰입하고 반응하면 걱정은 끝이 없을 것이다. 인생은 세월을 보내고 죽음 앞에 다다르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바보같이 무엇을 그리 잡겠다고 걱정과 근심 속에 사로잡혀 사는지 한심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불안 탈출 방법은 무사히 지나온 길에 안도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증권회사에서 학교로 넘어오는 과정을 책으로 썼다. 불안한 지금 그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힘든 시간을 잘 헤쳐 나왔으니 앞으로의 변화도 잘 헤쳐 나갈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화에 대한 탄력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마음이 부러지지 않도록 감내 폭을 늘려야 한다. 어쩌면 모든 변화를 따라잡으려는 것 자체가 욕심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몰랐다. 나이 들어서도 도전하는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그분들은 알 수 없는 끝을 불안해하기보다 그 끝을 당당히 마주하려는 용기를 가진 분들이다. 변화의 적응에 최선을 다한다면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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