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11
해외연수 프로그램에서 한 남학생과 대화하게 되었다. 최근에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자기가 그녀를 좋아하는 만큼 그녀가 자기를 좋아해 주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남학생은 자신이 아직 학생이라 그녀를 감싸줄 능력이 없는 것 같다며 그녀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녀를 향한 마음은 남학생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학생은 당장 그녀를 떠나지 못하도록 잡아야 한다. 사각진 턱과 짧은 머리, 작은 눈과 단정한 옷차림 그리고 바른말만 하는 그 재미없는 남학생은 30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 역시 30년 전에 한 여학생의 표정과 몸짓에 울다가 웃으며 가슴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사랑이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죽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이성에게 매력적일 것도 없는 내가 그 남학생에게 여자친구 잡는 방법을 조언해 주다니.’
그러나 지금 나는 그 남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세월이 나에게 알려준 지혜이다. 그는 연수 내내 틈만 나면 전화기를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하였다. 통화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통화의 상대자는 당연히 그의 여자친구였다. 부모에게도 그렇게 살갑게 전화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머릿속은 온통 그녀 생각뿐일 것이고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지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표정은 통화가 끝난 후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그녀에게 주고 싶을 것이고 그의 마음을 아낌없이 그녀에게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과 달리 머뭇거리는 그녀를 보면서 한없이 작아지고 있다.
남학생은 그녀에게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여자는 강하고 의지할 수 있는 남자가 필요하지, 너의 나약함을 받아주며 솔직함을 감사하게 여길 여자는 없다고 말이다. 다시 그는 말했다.
“교수님! 그러면 지금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네가 아무것이 되는 순간 너는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고 그때까지 그녀가 네 곁에 머물지는 장담할 수 없잖아.”
그러자 남학생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또 대답했다.
“그냥 그녀에게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다 지켜줄 수 있고 세상 모든 것을 다 갖다 바치겠다고 말해라.”
그러자 남학생은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솔직하지 못한 거잖아요?”
그래서 또 내가 말했다.
“그러면 너는 지금 네 여자친구를 놓아줄래 아니면 붙잡을래?”
그는 당연히 여자친구를 붙잡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지금 너는 그녀를 지킬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그 능력을 만들면 될 것 아니냐. 오히려 지금 너의 망설이는 모습과 어눌한 말투에서 그녀가 실망하여 떠날지도 모른다.”
나는 속으로 그에게 나 역시 30년 전에 너무 솔직해서 여자친구를 잡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 풋풋한 감정도 설레는 마음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어차피 세월이 지나면 서로를 의지하며 이해하고 사는 것이 부부인데 그때 당시는 왜 그렇게 여자친구 앞에서 슈퍼맨이 되려고 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남학생에게 말했다.
“너는 그녀를 잡기 위해 그 정도의 거짓말도 못 하냐.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그녀를 놓아주는 것보다 낫단 말이냐. 그런 마음으로 그녀를 사랑할 거라면 너는 진정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너에게 지금은 그것이 거짓말이겠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진실이 되도록 노력하면 된다. 그 정도의 자신감도 없이 어떻게 그녀를 네 곁에 둘 수 있겠느냐.”
그리고 나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설사 네가 그녀에게 강한 척했던 그 거짓말이 현실이 되지 못해도 너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 아니냐. 그러면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강한 자가 되지는 못했어도 너는 그녀에게 누구보다 강한 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녀 앞에 당당해져라. 그리고 너의 나약함을 그녀로부터 위로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
세월이 많이 흘렀다. 젊은 사람들의 사랑 얘기가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사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그것은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니 상처받을까 봐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세월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이 추억이 될 수 있다고.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절대로 배신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만 한다면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사랑을 위한 거짓말은 책임이 따르는 거짓말이다. 그러니 진짜 거짓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