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12
몇 해 전 한 학생이 특이한 고민을 안고 나에게 찾아왔다. 얼굴도 하얗고 옷도 멀쑥하게 차려입어 겉으로는 고민이 없어 보였다. 그의 고민은 다름 아니라 아버지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는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아버지가 나이 많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주로 아버지보다 한참 젊은 엄마의 그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버지 나이를 고민하기 시작할 때는 대학교에 들어와서부터이다. 친구들은 아버지와 캠핑도 가고 해외여행도 다니는데 자기 아버지는 나이가 너무 많아 그런 취미활동을 함께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에게 아버지의 나이를 물어보니 칠십 대 중반이셨다. 생각해 보니 그의 아버지는 그를 오십 대 초반에 낳은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변하여 결혼도 늦게 하고 결혼을 하여도 애도 갖지 않는 부부가 많다. 누군가가 애를 낳을 거면 빨리 결혼하고 그렇지 않으면 애를 아예 낳지 말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그 이유가 바로 이 학생을 두고 하는 얘기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늦둥이가 생겨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러나 상황도 모르고 태어난 그는 태어나 보니 나이 든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날 권리도 없었고 부모를 선택할 권리도 없었다. 그저 태어나니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환경에 처한 것뿐이다. 그는 그런 환경이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비정상적으로 보였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나에게는 두 딸이 있다. 둘 다 예쁘지만 둘째가 첫째보다 더 예뻐 보이는 것은 종족 번식의 본능 상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때 셋째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셋째가 태어났다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학생과 상담하면서 셋째에 관한 생각이 나만의 이기적인 욕심은 아니었나 하며 돌아본다. 요즘 둘째 딸은 아빠가 다른 아빠들보다 머리숱이 적다며 놀려대는데 셋째가 태어났다면 그는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생각해 본다.
그의 고민 앞에 인생은 다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태어날 그에게 의사도 묻지 않고 그를 낳은 것이다. 아마 그의 아버지는 태어날 그가 자기를 좋아해 줄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사실만으로 말이다. 나는 그 학생에게 말해 주었다.
“네가 네 의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너의 아버지가 너를 낳은 것이 잘못된 일도 아니다. 그냥 운명이 그렇게 설정된 것뿐이다.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나이 많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공짜로 주어진 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살다가 행복한 날이 오면 이 세상에 너를 태어나게 해 준 너의 아버지에게 감사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행복하게 살아라.”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위기로 느낄 만큼 중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러한 고민도 세월이 지나면 무게와 관점이 달라지며 퇴색해 버린다. 급기야 아무것도 아닌 추억으로 남는다. 아직은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냥 주어진 너의 인생을 재미있게 살라고 말했다.
나이 많은 아버지가 싫은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그의 욕심을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없었다면 그의 존재도 없었을 테니 고민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이미 존재하니 이유를 묻지 말고 아름답게 가꾸기만 하면 된다. 인생이 아름다워지면 모든 것에 감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