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14
젊음과 영원히 이별한 줄 알았다. 금방이라도 늙어버리는 줄 알았다. 멀어지는 날들만큼 내 기억도 비어갈 줄 알았다. 나를 괴롭히는 상념(想念)에 인생의 정점에 서 있는 줄 알았다. 다가오는 내일이 내리막길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나이 서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도 채워야 할 쇠털같이 많은 날에 안도하며 지나간 시간을 그저 추억으로 이해하였다. 가슴에는 지나간 시간의 공허함보다 다가올 시간의 설렘으로 가득하였다. 불안했지만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느낌이었다. 공허함은 불안과 맞물린 세상의 설렘을 짓누르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니 내 나이 서른은 그때의 상념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인다.
2001년 1월 1일 월요일 사회생활의 두 번째 해를 맞았다. 지난해는 취직의 기쁨도 잠시고 SK 글로벌 사태로 주식이 하락하여 괴로웠다. 동기들은 고객들의 항의를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사라져 갔다. 올해는 삼십 대의 첫해이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 노래가 무척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서른이 되면 주름살도 많이 생겨 갑자기 늙어버리는 줄 알았다. 다행히 스물아홉 해의 마지막 날과 서른 해의 첫날 사이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른은 지난날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시작되는 출발점인 것 같다.
2001년 1월 7일 일요일 눈이 굉장히 많이 온다. 이십 대가 지나가니 인생의 모든 것에 대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결혼은 점점 더 부담스러운 과제로 다가온다. 나는 결혼을 못 하면 문제가 있다는 세상의 시각에 길들어 있다. 세상은 말이 없는데 서른이 되니 세상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2001년 1월 27일 토요일 조급한 인생이 자꾸 내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는다. 오늘의 젊음을 누리지도 못한 채 미래에 대해서만 궁금해한다. 젊음의 친구는 불안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남들보다 빨리 미래로 달려가 내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 그곳에 가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나를 기쁘게 할 것만 같다.
2001년 2월 8일 목요일 시간이 예전보다 더 빨리 어디론가 사라진다. 시간을 잡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나는 이미 세상에 지배되어 시간의 쳇바퀴에 갇혔다. 나는 똑같은 자리에서 목적 없이 시간만 더 빨리 돌리고 있다.
2001년 2월 10일 토요일 이제야 일이 끝났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멀리 국회의사당의 파란 지붕이 색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내게 물어본다. 내 삶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2001년 2월 13일 화요일 설 연휴 마지막 날이다. 친척들은 내가 언제 결혼할 것인지에 대해 한마디씩 던진다. 결혼은 세상으로부터의 또 다른 관문인 것 같다. 나에 대한 걱정인지 질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친척들의 관심이 부담스럽다. 서른이 되니 세상으로부터의 간섭이 많아진다.
2001년 2월 14일 수요일 밸런타인데이이다. 초콜릿에 관한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지금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건물에서 일하고 있으니 나는 출세한 놈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이 생각난다. 난생처음 서울에 와서 국회의사당과 KBS 한국 방송을 방문하였다. 너무나 화려하고 현란한 불빛은 시골 소년의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 그 당시 TV 광고에 나오는 과자는 몇 달이 지나야 시골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과자는 시골 아이들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초○○” 과자가 생각난다. 초콜릿은 시골 아이들에게 하나의 꿈이자 희망의 상징이었다. 초콜릿은 부잣집의 자녀가 아니면 구경하기 힘든 그 무엇이었다. 그러한 초콜릿을 막대 과자로 찍어 먹는다는 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일이다. KBS 한국 방송에 방문했을 때, 아이들은 그 과자를 먹기 위해 지하 매점에 줄을 섰다. 매점 아저씨는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초콜릿은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아닌 단지 먹을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 초콜릿을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시골 소년이 꿈은 이뤘지만, 오늘따라 왠지 허전하다.
2001년 2월 15일 목요일 눈이 올 것 같다. 눈 오는 날이면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난다. 동네 아이들과 비료 포대를 들고 앞동산에 올라갔었다. 비료 포대는 질기고 두꺼운 것이 좋다. 부모님이 농사짓는 친구를 설득하여 비료를 다른 용기에 담고 포대만 빼갔었다. 그 후 며칠간 그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혼나서 집 밖을 나오지 못한 것이다. 비료 포대는 산비탈의 밭고랑에서 타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밭고랑을 내려가면 놀이동산의 어떤 놀이기구도 부럽지 않았다. 양다리로 비료 포대의 방향을 조정하였고 발뒤꿈치로 제동을 걸었다. 가끔 산비탈을 내려가다가 중요 부위가 눈 속에 파묻힌 나무 밑동과 부딪히기도 했다. 그때 그 친구들은 모두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젠가는 끝을 보지 못해 비료 포대와 함께 차가운 시냇물에 빠진 적도 있었다. 과거의 겨울은 지금보다 더 추웠다. 그런데 왜 기억은 그 겨울을 포근하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2001년 2월 16일 금요일 어제는 32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어제의 적설량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적설량 기록을 깬 것이다. 서른이 되었지만 이렇게 새하얀 세상은 처음이다. 서른에는 아직도 새로운 것이 많다.
2001년 2월 28일 수요일 어렸을 적 봄이 오면 엄마와 냉이 뜯으러 앞산에 올라갔었다. 지금은 체육공원이 되어버렸지만, 앞산은 어릴 적 모든 추억을 품고 있다. 겨울에는 활을 만들기 위해 주인 몰래 밭에 들어가 대나무를 잘라 왔다. 가을에는 우거진 숲 사이로 다람쥐가 뛰어다녔고, 바지 주머니는 호두, 감, 밤 그리고 도토리로 터져 나갔다. 6·25전쟁 때 방공호로 쓰였던 호랑이굴과 두더지 굴은 숨바꼭질에 꼭 필요했었다. 지금 사람들은 앞산을 콘크리트와 벽돌로 덮어 버렸고 그곳에 나의 추억도 함께 묻혔다. 그래도 서른이면 묻힌 추억보다 만들 추억이 더 많다고 위로해 본다.
아직은 젊다고 믿었던 서른도 이십 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오십이 넘어보니 아직도 젊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민망한 구석이 있다. 변화된 모습에 거울 앞에 서는 것이 망설여지고 사진에 찍히는 것이 꺼려진다. 한때 새로운 곳에만 가면 그곳의 나를 사진으로 박아 간직하였다. 이제는 사진 속에 나를 박제하려는 노력이 시들시들해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몸에서 나오는 마음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곳저곳 쑤시고 아픈 곳이 많아질수록 나이를 잊으려는 노력이 허사가 된다. 살 만큼 살았다는 우리의 위로는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보다 익숙한 것의 편안함에 더 길들어진다. 어차피 인생은 의미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잠깐 한눈팔면 깊은 공허함에 매몰될 수 있다. 그렇게 어른스러워 보였던 서른의 나이가 지금은 까마득히 어려 보인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른이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왜 세월이 흘러야 그때를 이해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가도 또다시 부러워할 서른을 그렇게 보냈다. 먼 훗날 젊어 보일 지금을 과거의 허무에 내어주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지금부터는 서른보다 더 단단히 마음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지나간 시간의 그리움에 묶여 남은 인생을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할 수 있다. 지금을 후회로 남기지 않으려면 아직은 젊다고 믿어보자.
서른 살이 무언가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 후회가 또 다른 후회를 낳지 않으려면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고. 그리고 서른 살은 그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도 아름답고 젊은 나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