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온전히 네 것인 이유

청춘 2

by 박범진 작가

창밖에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무언가에 의해 분주했던 마음 그리고 무언가에 의해 어지럽혀진 감정이 사그라진다. 갑자기 몇 해 전 상담했던 학생이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학생은 내 연구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여학생이라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한참을 훌쩍이던 그녀는 너무 괴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입을 뗀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자기는 어머니의 손에 자랐고 아버지는 이혼 후에 재혼하셨다고 했다. 그녀는 성인이 될 때까지 자기를 돌봐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 증오심을 품고 원망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몇 주 전 그녀는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엄마의 지인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증오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그녀는 만감(萬感)이 교차하면서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미 아버지 쪽 가족들과는 연락이 끊긴 지 한참 되었다.

그녀의 엄마는 그래도 너를 낳은 아버지인데 빈소에는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가게 되었다. 그녀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엄마는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도 자기를 만들어준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에 슬픔의 파도가 마음속에 일기 시작했다.

그녀는 엄마와 장례식장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아버지 쪽의 가족 그러니까 아버지 형제와 고모가 그들을 문전 박대했다. 이미 인연이 끝났는데 왜 찾아오느냐면서 말이다. 죽은 아버지의 재산을 탐하려고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에게 분란을 일으키려고 온 것도 아닌데 아버지 가족들은 남보다도 더 못한 푸대접을 하였다.

그녀는 엄마와 집으로 오는 내내 펑펑 울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아무도 자기의 존재에 관심이 없어서 세상에 잘못 태어났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급기야 엄마도 미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나도 그녀의 나이일 때 겪어보지 못한 고통인데 내가 감히 그녀를 위로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네 인생을 살아라. 네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시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다. 부모가 네 인생을 책임져 줄 것도 아니다. 부모가 더 완벽한 인격체일 거라고 믿었던 너의 마음에서 너 자신을 해방해라. 인생은 네가 만들어가는 것이고 네가 책임지는 것이다. 네 인생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한동안 마음은 아프겠지만 그렇다고 네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냐!”

훌쩍이는 그녀 앞에서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이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행복한 일들이 많으니 죽기 전에 그것들을 모두 누리며 살 생각을 해라. 네가 부모 인생을 책임질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라. 부모는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 하며 자식에게 매달릴 수 있다. 그러나 부모는 너를 책임지겠다는 마음의 서약을 하고 낳았을 것이니 너무 마음의 짐을 지려고 하지 마라.”

한참 후에 나는 이렇게 그녀를 위로하였다.


“네가 홀로서기를 해서 잘 살면 부모님도 기뻐하실 거다. 남의 인생에 네 인생이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우리는 부모라는 존재로부터 태어났지만, 영원한 시간 속에 그저 지나가는 티끌 같은 존재이니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라.”

그녀의 젊음이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망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인생은 어떻든 간에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니 온전히 그녀의 것이다. 그녀가 아픔을 딛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빗속에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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