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우체국 앞이 설레는 이유

청춘 3

by 박범진 작가

가을에 우체국 앞이 설레는 이유는 나에게 무심이 편지를 건넬 것 같은 누군가의 기다림 그리고 그 추억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가을날의 우체국은 언제나 내 마음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언젠가 우체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몇 시간을 설렜었다. 그런 내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한데 그때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속세에 찌든 부끄러운 추물(醜物)로 남아 있다.


한때 활짝 핀 꽃을 보며 알지 못할 희망에 설렜고 떨어지는 낙엽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 아이는 이제 내 마음속에서 사라진 걸까? 어디쯤 와 있을지 모를 그녀를 기다리며 몇 시간을 설레어도 아깝지 않았던 그 시간!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에 언제나 감사했던 그 겸손한 마음! 감당할 수 없는 청춘에 누군가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그 순수!


나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에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다시 한번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뒤에서 나타나 금방이라도 등 떠밀며 ‘선배’라고 외치는 동아리 후배일까? 조치원역 앞에서 놀러 가려고 기다렸던 그 친구들일까? 언제 내 곁을 떠날지 몰라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애타게 그리워했던 그녀일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한동안 가을에 빠져 있었던 나 자신일까?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과 부대끼며 마음에도 없는 웃음과 말들로 나 자신을 속였다. 그 많은 날이 푸른 가을날에 내 마음을 울린다. 정말로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오래 남을 수 없는 것일까? 나를 설레게 했던 그 많은 것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을까?


훌쩍 흘러간 세월 앞에 내게 남은 것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당황한 마음뿐이다. 그러나 나에겐 아직도 아름다운 것들만 보고 아름다운 사람들만 만나며 아름다운 생각만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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