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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진 작가 Mar 12. 2024

종교가 없는 이유

관계 20

내가 종교가 없는 이유는 잘못된 생각이 종교로 인해 바로잡히기는커녕 오히려 굳어지는 모순(矛盾)에 빠질까 봐 두려워서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의 한없는 유한함에 종교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때로는 종교가 욕심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심을 부추기는 근거가 되는 것 같다.  

   

나의 종교는 어렸을 때 천주교 부설 유치원을 다니면서 시작되었다. 종교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 유치원 선생님이 주셨던 그 초코파이가 좋아서 종교가 좋았다. 오래 먹으려고 초코파이를 손바닥으로 내리쳐 넓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집 앞 교회에서 주최하는 여름성경학교에 다녔다. 먹을 것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먹을 것과 선물을 주는 교회가 좋았다. 군대에 가서는 종교의 힘을 빌려 자본주의 물욕을 채웠다. 부대 내에는 교회와 절이 있었는데 기도 시간이 달랐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초코파이를 얻었고, 절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떡을 얻었다. 하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보다 더 절실했던 것은 짬밥에 절어있는 혀끝에 달콤함을 안겨 줄 초코파이와 떡이었다.     


세월이 지나 그 고마웠던 종교가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살면서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면 어딘가에 기대고 싶다. 그러나 그 괴롭고 힘든 마음을 편안하게 할 욕심으로 종교를 택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부 종교인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 모습에 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종교의 힘을 빌려 합리화하고 공고히 하는 것이 싫었다.     


세상에 나쁜 짓은 다 해 놓고 하나님과 부처님께 잘못했다고 빌어 자기 마음만 편안하게 하는 사람들을 본다. 자기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힘으로 더 강력하게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종교를 가져도 선한 기운보다 악한 기운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선거철만 되면 갑자기 종교인으로 변신하여 교회나 절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본다. 신도들을 이용하여 부(富)를 축적하고 자기 방패막이로 쓰는 사람들을 본다. 하나님과 부처님을 앞세워 자기 목소리를 합리화하는 사람들을 본다. 신도들의 헌금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가족 간에 재산 싸움하는 사람들을 본다.     


자랑질할 곳이 없어서 교회나 절에 가서 감투를 써야 하는 사람들을 본다. 하나님과 부처님의 이름으로 편 가르며 싫은 사람들을 배척하는 사람들을 본다. 하나님과 부처님을 앞세워 사람들의 등을 치고 돈을 버는 사람들을 본다. 하나님과 부처님에게만 용서를 구하면 어떠한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 고요한 숲속에 자리 잡은 성당을 지날 때면 기도한다.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를 지날 때도 기도한다. 등산을 갔다가 마주치는 사찰에서도 기도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그냥 온전히 이대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누구도 사후 세계(死後世界)에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곳은 오직 죽음으로만 갈 수 있는 두려운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사후 세계를 천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종교는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종교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며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한 종교인을 만난다. 그러나 가끔은 법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종교인도 만난다. 다양한 성격과 목적을 가진 종교인들 사이에 하나님과 부처님은 말없이 서 있다. 나는 교회와 절에 가지 않을 뿐 하나님과 부처님을 사랑한다. 그분들은 자신들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으실 것이다.     


종교가 없어도 항상 낮은 자세로 유한한 인생을 상기하며 산다면 어설픈 종교인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종교를 통해 얻는 것이 마음의 평화라면 하나님과 부처님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세상에는 내 마음을 흔드는 것들이 너무 많다내 마음을 아무리 흔들어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을 수 있는 내 안의 자아(自我)를 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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