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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진 작가 Mar 11. 2024

명절이 부담스러운 이유

관계 19

다가오는 명절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명절에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많기 때문이다. 명절에는 제사를 지낸다. 요즘은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며느리들 사이에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간의 휴식에 대한 기쁨보다 어떻게 하면 무사히 제사를 지낼지 걱정이 앞선다. 제사는 사실 명절에만 지내지 않는다. 종갓집이거나 장남이면 평일에도 제사를 지낸다. 일 년에 24번까지 제사를 지내는 집도 봤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많은 제사를 챙기는 것은 힘든 것을 떠나 가족 간의 갈등을 만들어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온몸이 성하지 않은 어른들은 자식들을 채근하여 제사를 제대로 지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바쁜 자식들은 제사를 간소화하고 싶어 한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일 수 있는 황금 같은 명절에 제사 준비로 괴롭다. 밤이 되어야 제사를 지내는 집은 음식을 모두 준비하고도 밤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 지인은 제사 지내는 일로 형제간에 다투어 아예 제사를 없애고 각자 성묘하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명절에는 제사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척들은 평상시 관심도 없다가 명절만 되면 급 폭풍의 관심을 보인다. 결혼 전에는 그 관심을 혼자만 얻어맞으면 됐지만 결혼한 후에는 가족과 함께 얻어맞는다.     


아이들에게는 공부 잘하냐, 학교에서 몇 등 하냐, 키는 반에서 몇 번째냐고 묻는다. 고3 수험생에게는 대학교는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고, 대학 졸업생에게는 취직은 언제 할 것이냐, 어느 회사에 취직할 것이냐고 묻는다. 취직한 조카에게는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 연봉은 어느 정도 되냐고 묻는다. 결혼한 친척에게는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이냐, 딸만 있으면 아들도 낳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국가가 명절이라고 정해 놓은 날에 집에 갔더니 형제자매들은 제사 때문에 서로 싸우고, 평상시 관심 없던 친척들은 부담스러운 질문으로 마음에 상처를 준다. 또한 며느리는 남의 집 조상의 제사를 지내느라 몸과 마음이 멍들어 이혼을 결심한다. 돌아가신 분은 말이 없는데 살아있는 사람들은 말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다.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생각해 본다.      


그런가 하면 현명한 가족도 있다. 어느 노부부는 명절 일주일 전에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고 명절에는 자녀와 리조트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비행기 타고 해외로 놀러 가고, 조상 덕을 보지 못한 사람들만 제사를 지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명절이 가족 간에 갈등의 불씨가 된다면 차라리 그날은 가족이 즐겁게 노는 날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다.    

 

명절만 되면 반복되는 안 좋은 기억은 지레짐작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반면에 명절에 가족과 즐거운 기억은 명절을 기다리게 한다. 명절은 조상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기리는 뜻깊은 날이다. 그러나 가족 간에 갈등이 빚어지는 부담스러운 날이라면 우리는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명절에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정성을 다하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작 배려가 없는 것 같다명절은 우리에게 좋은 기억이 있어야 지속해서 유지될 것이다명절이 형식과 시대에 맞지 않는 관행에 얽매여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면 바쁜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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