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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령 Feb 29. 2024

15. 아는데 모르겠어

1학년 우리반 특별한 받아쓰기

교실 뒤에 누워 이면지로 놀던 녀석들이 큰 소리를 낸다.


나 하마 알거든? 직접 봤거든?“
그런데 돼지를 그려놨잖아. 모르는거네.”


엿들으면서 하마를 끄적여보는데 ‘눈이랑 콧구멍이 어디 붙었더라?’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나 하마를 진짜 아는 것일까.


아이들의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교과서와 그림책에서 배운 키워드를 점검할 시간,

새로운 어휘를 접한 시간,

헷갈리는 맞춤법을 익힌 시간,

대뜸 하자고 외치는 시간.

글자를 쓰고, 그림으로 표현한다.

6번 너구리, 7번 오소리”


“너구리는 검은무늬가 동그랗고, 오소리는 길쭉해.”

“너구리는 눈에서 볼까지, 오소리는 귀에서 눈까지 검어.”

“너구리는 선글라스끼고 오소리는 귀마개껴.”


1번 오징어, 2번 문어, 3번 낙지. 4번 거미”

“오징어 다리 10개, 문어 8개, 낙지 8개. 거미 8개.”


세발낙지는?”


“세발낙지도 낙지죠. 헷갈리게 하지 마세요.”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방법으로 기억하고 작은 차이를 알아차려 소중한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준다.


1번 무씨래기.”

“선생님, 소리가 너무 세요. 다시 해주세요.”

“1번 무시래기.”


불러주면 글씨만 쓰는 게 아니라 그 모습을 머리 속에 가득 채운다.


1번 <강아지똥>*,
2번 <친구를 모두 잃어버리는 방법>,
3번 누리호 발사 성공….
10번 김다윤이 전학왔다.
11번 음력 15일에 보름달이 뜬다….“


어떻게 표현할지 서로 나누고 깔깔댄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 내 빠르게 친구들이 알아볼 수 있게 표현해야 한다.


표현방식은 다 다르다. 생각이 안나서 하기싫다 울던 아이도 매일같이 하다보니 이젠 요리조리 고쳐댄다.


“선생님, 얼른 받아쓰기 시켜주세요!”

내가 ’1번~‘ 하고 외치면 조용해져 눈들만 반짝인다.


<붉은 여우 아저씨>.”

나도 같이 해 본다.


선생님, 여우를 왜 토끼로 그려놨어요?”


*<>안은 우리반이 함께 읽은 그림책 제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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