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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령 Mar 20. 2024

19. 방귀 사린마

8살 방구도 지독하다

1학년 한글 수업에는 대형 한글 자석이 필수다. 칠판을 가득 채운 한글 자석을 붙였다 떼며 한글을 익힌다.


쉬는 시간, 잠깐 교실을 비웠다가 교실문을 벌컥 열었더니 칠판 쪽에 몰려있던 아이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다. 키득거리며 우루루 자리로 돌아간다.


칠판을 살펴보니 협동하여 만든 글귀,

‘차선령 방귀’

다시 나가야 해서 단단히 일러두었다.

내 방구 지독한 걸 알아챘군.
저것 쓴 범인들 얼굴에
선생님 방구 한 방씩 쏠거다.”


하고 돌아오니

‘사린마’

(살인마의 잘못된 표기, 선생님이 방귀를 얼굴에 쏜다면 죽음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뜻)

다른 1학년 여선생님들 교실에서는

‘예쁜 선생님’, ‘선생님 공주’, ‘사랑해요’ 글귀로 가득하던데


담임 취향을 벌써 꿰뚫은 우리반은

‘차선령 방귀 사린마’


실컷 웃다가 생각해보니 조금 억울하다.

지들은 방귀 참지도 못해서 공부 시간에도 뿡뿡거리

면서 나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다.

공기청정기가 빨간불을 켜고 맹렬히 작동할 정도로

1학년 방귀 냄새가 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줘놓고는.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방귀 말고 상큼한 일이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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