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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8세의 사회생활도 쓰다

힘을 빼야 보이는 것들

by 차선령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때가 있다.

학교라는 직장은 내 사회생활이니 붙들고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오늘은 그게 힘들다.

선생님 오늘 웃음이 나지 않아.
하루만 힘없을게.”
저도 힘들 때 있어요.”

한 명씩 털어놓는다. 평상시 같으면 하나하나 정성들여 위로와 조언들을 해줄 텐데 오늘은 그저 가만히 들어주고 한 명씩 안아줄 힘밖에 나지 않는다.


‘쪼꼬만 녀석들도 힘든 것이 많네.’

‘저 때는 저 힘듦이 세상 무너질 듯 다가오고 옆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줘도 들리지 않지.

온전히 받아들여야 온전히 이겨낼 수 있어. 그리고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란 걸 느낄 거야.’


지금껏 잘 들어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나이 때를 이미 겪은 어른이고 선생님이니까 8살 아이의 고민을 얼른 앞질러 가서 해결해 주려 애를 썼다.

그런데 힘을 빼고 안아주기만 했더니 8살의 마음으로 돌아가 통한다. 아이들은 내가 많은 이야기를 해줄 때보다 편안해 보인다. 나도 아이들과의 포옹으로 마음이 말랑해졌다.

돌봄에 가야 할 녀석이 다시 돌아와 오늘은 교실에 있겠다고 요청한다. 돌봄 선생님과 부모님께 연락드린 후 옆에 앉아 요구르트 한 잔을 건넸다.

선생님, 혼자 블록을 좀 쌓고 싶어요.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요.

양보도 해야 하고
친구 말도 들어줘야 하고 신경 써야 해요.

수업도 돌봄도 피곤한데,
집에 가도 동생이 날 가만히 두지 않아요.”

녀석들에게는 학교에서의 모든 시간이 사회생활이다.

나만 사회생활을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혼자 있고 싶을 땐 또 언제든지 말해.”

잔소리쟁이인 선생님이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궁금해져 내 옆에 온 아이에게 이 말을 건네니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작은 이, 큰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치열하게 살고 있다.

힘을 빼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회생활의 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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