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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안전에 갇힌 자율

불안한 세상 흔들리는 아이들

by 차선령
선생님은 한 명인데
우리반 모두가 선생님을 부르고 있어!”


왜 선생님을 불렀는지 이야기 나눈다. 선생님한테 물어봐야 하고 허락받아야 하고 말해줘야 해서 그렇단다.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하려면 교사의 지도에 일관성이 바탕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도 학교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지도해야 아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내 수업 장면을 되돌아본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는 꼭 손잡이를 잡아야 해요.”

“손잡이에 바이러스 있다고 잡지말라고 했어요.”


“길을 가르쳐주라는 할아버지를 무시하면 안 돼요.”

“어른은 어린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요. 대답하면 안 돼요. 유괴범이에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오늘은 중간놀이 시간에 1학년이 운동장에서 놀 수 있어요!”

“놀이터에 놀이기구도 위험해요.”

“미세먼지 때문에 나가면 안되잖아요.”

“운동장 모래에도 세균이 있다고 했어요.”


우리반이 흔들리는 영역을 찾아냈다. 안전이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금지로 가득한 세상,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하지 마라”라는 학생들. 세상에는 위험한 요소가 너무나 많다.


실수의 기회를 만들어 주면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위험에 대응하여 주의할 줄 알게 될 것이라 믿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최소한의 손상이 아닌 의도하지 않은 사고들이 불거지면서 사회는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안전을 강조하게 되었고 학교는 호기심과 추동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도전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회의 마치고 교실로 오니 쪽지와 함께 이 무시무시한 것을 놔두고 간 녀석들.

사람들이 다칠까봐 스스로 판단한 이 실천 그대로 칭찬을 해줘야 하나?

다음엔 직접 행동하지 않고 선생님을 부르라고 해야 할까?

위험하니까 이런 것은 그냥 놔두라고 해야 할까?


이처럼 천사같은 아이들이 스스로 서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믿음대로 가르치는 것에 자신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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