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질문
생성형 AI는 지난 한 해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요즘 들어 특히 활용 범위나 방향성이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다. 사용 경험이 늘면서 기존 방식이 체계를 잡고 숙달되고 익숙해졌다. 그 사이 AI 기술이 더 발달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제까지 생성형 AI를 사용해서 발행하고 있는 콘텐츠를 생각해 보면 참 별 거 없다. 내 나름 생성형 AI 강의도 듣고 책도 몇 권 훑어보긴 했지만 남들 다 아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발행 초기와 지금을 비교하면 콘텐츠 질은 확실히 올라갔다. 작업 시간도 줄었다.
이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 AI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인풋(Input)만이 새로운 자극이나 계기를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웃풋(Output)이 새로운 인풋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번엔 어떤 아웃풋이 새로운 인풋으로 작용할지 기대하며 질문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ChatGPT 4o
1. 사람은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접근을 해야 할까요?
2. 직관에 의존해 내린 선택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 직관을 다시 신뢰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실패한 직관을 다시 신뢰하게 만드는 경험이나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3. 자신을 잘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직관의 작동 방식이 다르게 나타날까요?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지 예상해 볼 수 있을까요?
4. 모든 선택이 행복을 위해 이루어진다고 가정할 때, 행복을 향한 집착이 오히려 행복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걸까요?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감정과 직관이 어떤 식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5. 때때로 우리는 선택을 미루며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경험이 늘 더 나은 선택으로 이어질까요, 아니면 경험이 많아질수록 선택이 오히려 어려워질 수도 있을까요?
11화 [직관을 신뢰해야 하는 순간]을 올리며, 애써 30화까지 채워 연재할 생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비슷한 질문만 하거나 흥미를 끄는 질문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을 여정이 끝났다는 신호로 보겠다고 8화 [약한 연결의 힘]에서도 언급했다. 아무래도 생성형 AI는 아직 이 프로젝트를 끝낼 생각이 없는 듯하다.
ChatGPT 4o
모든 선택이 행복을 위해 이루어진다고 가정할 때, 행복을 향한 집착이 오히려 행복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걸까요?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감정과 직관이 어떤 식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집착으로 괴로워한다. 그중 대다수는 행복에 집착해서 괴롭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괴로워한다. 행복을 끊기지 않고 지속되어야 하는 상태라고 여겨 행복하지 않은 순간을 용납하지 못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요즘 사람들은 인간을 결핍이라곤 하나도 없이 완전무결해야 하는 존재처럼 생각한다고 꼬집은 숏츠 영상이 떠오른다.
감정의 디폴트 상태를 기분이 살짝 좋은 정도라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살짝 다운된 상태라고 한다. 조금 잔잔하게 우울한 정도가 기본이라니, 처음엔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에 조금만 긍정적인 자극이 주어져도 플러스 방향으로 향하기 쉽다는 의미기도 하다. 또한 그만큼 긍정적인 자극을 더 크게 추구하려는 모멘텀이 생기기도 한다.
매일 가슴 설레고 신나고 즐거운 파티 같고, 하루하루가 충만하여 갓생을 살아야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핍이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또 다른 의미로 기형적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자극과 에너지가 되고, 긍정적인 감정은 자유와 평화를 안겨 준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적 경험, 희로애락의 선율 위에서 살아갈 때 풍부한 삶을 살 수 있다.
화단을 가꾸는 사람은 땅에 온통 한 가지 꽃만 심지 않는다. 여러 가지 꽃을 심게 되기 마련이다. 꽃만 심는 것도 아니다. 다른 식물들도 함께 심는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질 때 더 아름다운 화단을 가꿀 수 있다. 감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엇보다 자극엔 역치가 있다. 행복의 역치를 낮출 수 있도록 조금 덜 행복한 순간도 허락해야 한다.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른다. 도파민 보상 시스템은 끊임없이 계속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감정과 직관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알지만, 그렇기에 한계 없이 그것을 쫓는다. 욕망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것은 이성뿐이다. 삶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충만하게 느끼고, 이성이 제대로 기능할 때 인간은 인간다워질 수 있다.
ChatGPT 4o
행복에 대한 집착은 행복을 오히려 더 멀게 만드는 역설적인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상태로 오해하여, 일시적인 불행이나 불만족을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행복하지 않음'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사람들을 행복과 불행이라는 극단 사이에 갇히게 하여, 행복이 되지 못하는 순간을 스스로 불행으로 낙인찍게 만듭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현대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우리는 결핍 없는 완전한 인간을 목표로 하는 이미지들에 노출되며, 기분 좋고 활기찬 상태가 기본값이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감정의 기본 상태는 오히려 중립이나 살짝 우울한 쪽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이는 오히려 조금의 긍정적 자극에도 쉽게 기분이 상승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자연스러운 상태이기도 합니다.
행복을 끊임없이 추구하다 보면 감정의 다양한 색채가 무시되거나 억압되기 쉬운데, 이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정서적 발달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 정원이 단 한 종류의 꽃으로만 이루어졌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매력적이지 못할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의 정원에는 다양한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슬픔과 고통조차도 삶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서 풍부한 내면을 만들어 주고, 궁극적으로는 행복에 대한 역치를 조절하여 더 작고 사소한 일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우리를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게 하는 도파민 보상 시스템은, 우리의 욕구를 끝없이 확장하게 하지만 그로 인해 길을 잃기도 합니다. 감정과 직관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 주지만, 그 욕망의 추구가 무한해지면 결국에는 이성이 필요하게 됩니다. 감정과 직관이 충만하게 느껴질 때조차 이성은 균형을 잡아 주며, 우리가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행복이란 극단적인 긍정 상태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 속에서 삶을 온전히 느낄 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에도 내 답변을 정리해서 다시 작성하기만 했다. 생성형 AI가 쓰는 글은 잘 쓰긴 했지만 어쩐지 매력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AI가 썼기 때문에 편견을 갖는 건 절대 아니다. 수정 없이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순간도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프롬프트를 세밀하게 조정하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의 매력이 결핍에서 나오듯, 글의 매력이 부족함에서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요즘 AI를 사용해서 소설을 쓰고 있다. 가급적 AI가 작성한 비중을 늘리려고 하는데도 내가 작성하는 분량이 상당하다. AI 비중을 늘린다고 해서 AI에 의존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진 자원을 배분하는 것에 대한 문제다. AI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위임하고 나는 그 다음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쉽고 가볍게 읽기 좋은 이야기는 작업 과정 또한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AI가 작성한 내용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수정하고, 무엇을 뺄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나의 의지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에 따라서 결과물은 달라져 간다. 나의 의지를 어떻게 반영시킬지 그 과정에서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 노하우를 경험을 통해 얻어야 한다. 직원 고용해 놓고 답답하다고 혼자 일 다 하는 사장이 되어선 안된다는 거다. 그런 시도를 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