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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민 Apr 17. 2024

노래방은 사절입니다만...

그들만의 블루스



그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한 가지 철학이 있다면 회식하면서 절대 노래방은 안 간다는 점이다.

요즘 MZ세대들은 저녁 회식 자체를 거부하지만 과거 회식에서 1차는 삼겹살에 소주, 2차는 호프집에서 맥주, 그리고 3차는 노래방 가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 물론 나도 입사 초기에는 따라다녔다.


노래방은 1990년 부산에서 최초로 생겼고 1990년대 중반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회식 마무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노래방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빌리지 피플의 <YMCA>를 목청껏 부르고 헤어졌다.

그나마 단합 차원에서 방방 뛰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괜찮았지만 문제는 블루스였다.

술도 거나하게 마셨겠다, 끈적이는 노랫소리와 싸이키 조명 아래 언제부터인지 남녀가 몸을 맞대고 흐느적거리며 블루스를 추었다.

나이 든 차장이나 부서장이 한사코 싫다는 어린 여직원을 끌어안고 블루스를 추는 모습도 싫었고, 나 또한 끌려나가 못된 손으로 여기저기 쓰다듬는 나쁜 인간들의 거시기를 발로 뻥 차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 아니었다.

지금이야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라고 했겠지만...


더 견디지 못한 건 그런 나쁜 놈들을 앞장서 혼내거나 막지는 못할망정 함께 온몸을 밀착해 춤을 추는 여자선배들의 모습이었다.

좁은 노래방 소파에 앉아 바로 코 앞에서 꼴 사나운 중년의 남녀를 보며 드는 생각은 '고추 닿겠다...'였다.    

저렇게 딱 붙어 춤을 추면 분명 거시기 닿는 게 느껴질 텐데... 즐기는 걸까?

더 가관은 흥이 넘쳐 바닥에서 앉은뱅이춤을 추는 뽀글이 파마머리 여자선배다.

'지가 공옥진 선생이야?' 

씹어 삼키던 짭조름한 새우깡이 목구멍으로 넘어올 것처럼 20대의 나는 참 역겨웠다.


그 이후로 1, 2차에서 노래방으로 이동할 때는 들어가는 척하다가 뒷골목을 돌아 얼른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다.

도망가다가 들키면 배정된 노래방 문 앞에 핸드백과 외투를 놓고 들어가, 사람들이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노래방 책에 코를 박고 선곡할 틈을 타 화장실 다녀온다고 나와 달아났다.  


이런 행동이 몇 번 되다 보니 나는 당연히 노래방 안 가는 직원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부서장이 바뀌고 환영회식, 송년회 등 때마다 계속 반복됐다.

어느덧 직급이 올라가 내가 회식자리를 선택할 직위가 된 후엔 당연히 노래방은 가지 않았다.

물론 텐션이 넘쳐 노래방을 외치는 직원들을 외면할 수 없을 때는 여직원들만 데리고  간 적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만 마시면 가수 최헌의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에~'를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신 부장은 억지로 직원들을 노래방에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런 신 부장한테 집에서 홀로 아리랑을 부르라고 블루투스 마이크를 선물해 줬다.


코로나-19로 잠잠했던 노래방이 다시 인기다.

필 받은 신 부장이 말한다.

"본부장님! 벚꽃도 날리고, 날도 날이니 노래방 한번 가시지요."

"전 노래방은 사절입니다만... 우리 닭발에 소주 한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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