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 우유 스틱이에요.”
보안 요원이 원담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제가 좀 애들 입맛이라….”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긴장하면 늘 이 모양이다.
잠시 짐을 뒤적거리던 보안요원이 고개를 끄덕하며 손에 들고 있던 텀블러를 원담에게 건네며 지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원담은 태연하게 캐리어의 지퍼를 잠그고 검색대를 통과했다. 종종걸음으로 공항문을 빠져나와 가장 앞에 서 있는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기사가 짐을 트렁크에 실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하고 뒷자리에 실었다.
“마디푸시 리조트.”
택시가 출발했다. 원담은 옆자리에 실은 캐리어를 연인처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참아….”
수상비행기로 갈아타고 리조트에 도착해 방에 들어선 원담은 가장 먼저 텀블러에 넣어온 초코 우유 스틱을 꺼내 살폈다. 투명한 비닐봉지에 밀봉된 다섯 개의 빨대는 출발할 때와 달라진 것이 없어보였다. 원담은 빨대들을 냉동실에 집어넣고 남은 짐은 풀지도 않은 채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잠시후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에어컨이 켜진 방 안은 서늘했고 해가 하늘 꼭대기에 걸린 방 밖은 뜨거웠다. 해가 수평선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 원담이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원담이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달려갔다. 그리고 급하게 냉동실 문을 열었다. 빨대는 그대로였다. 냉동실을 확인한 원담은 생수 한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캐리어를 열어 야자수가 프린트된 셔츠와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모자와 썬글라스까지 챙긴 원담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바닷가에 지어진 방갈로형 호텔이라 습하고 더운 공기가 그대로 온 몸을 감쌌다. 하지만 세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노을에 물든 하늘과 바다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닷바람이 그 색들을 이리저리 퍼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만의 낙원이 될거야. 우리만의…”
홀린듯 하늘과 바다를 쳐다보던 원담이 자신의 호텔방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레스토랑은 만족스러웠다. 바다를 보며 먹는 이국적인 음식. 와인까지 한 잔 곁들인 원담은 제법 오랫동안 밤바다를 만끽하고 호텔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잠이들었다.
“서, 서연아! 안돼, 안돼!”
옷도 벗지 않고 잠들어 있던 원담이 두 손을 휘저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날 뿐 어두운 방 안은 조용했다. 연인이자 동료였던 사람. 지금 하던 연구만 마무리 되면 몰디브 마디푸시에 와서 왕처럼 며칠이고 원없이 놀고 먹을 거라고 벼르던 사람. 포니테일 스타일로 야무지게 묶은 머리가 생기넘쳤고, 검은 뿔테 안경, 화장하지 않은 얼굴과 수수한 악세사리에도 화려하게 빛났던 사람. 찢어진 청바지를 즐겨 입고 큰 소리로 웃는 것이 매력적이었던 그녀가 오늘도 원담의 꿈 속에서 조각조각 부서져내리고 있었다. 꿈 속에서도 원담은 현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작고 검은 조각으로 부서져 내리면서도 그녀는 아무일 없다는 듯 평소와 다름 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원담은 부서져내린 조각들을 끌어안고 통곡하며 절규했다. 그렇게 절규하다가 제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난 원담은 객실 불도 켜지 안은 채 냉동실 문을 열어 안에 넣어 둔 빨대들을 손끝으로 만졌다. 결정적 순간까지 빨대와 빨대 안에 든 것들을 안전하게 보관하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연이 그토록 원했던 곳. 살아서 오지 못하고 이제야 오게 된 곳. 이곳을 서연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몇 달을 두고 고심하던 원담이 생각해 낸 방법은 조각난 서연의 몸을 이곳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사고로 밀폐된 사육장 안에 갇혀 포악한 거미들에게 물어 뜯긴 서연의 몸을 말이다. 굳게 잠긴 사육장 유리벽을 미친 듯이 두들기던 원담을 보며 서연은 웃고 있었다. 제가 키우고 연구하던 거미들이 달려들어 온몸을 물어뜯고 갈기갈기 찢는 동안에도 서연은 웃고 있었다.
“서연은 죽은 게 아니야…. 거미로 다시 태어난 것뿐이야….”
냉동실의 빨대를 쳐다보는 원담의 눈이 기이하게 번뜩였다. 3일을 묵을 계획이었던 원담은 일정을 바꿔 그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순교의 사명을 깨달은 선지자처럼, 낙원을 만드는 경건한 작업을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텔 프런트에서 교통편에 대한 스케줄 조정까지 모두 마친 원담은 수상 비행기 승장장에 서 있었다. 아침 일찍 리조트를 떠나려는 신혼부부 몇 쌍이 아쉬워하며 마지막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도 원담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주위를 살피던 원담이 텀블러에 넣어왔던 빨대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더운 공기를 만나자 가만히 숨죽이고 있었던 검은 알갱이들이 깨어나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벗기고 꼭지를 비틀어 딴 후 근처 모래밭에 알갱이들을 흩뿌려 놓았다. 모래밭을 맴돌던 알갱이, 아니 거미들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번식 속도나 사냥 실력으로 보면 이 섬은 일주일도 못되어 서연과 하나가 된 거미들에게 점령당하게 될 것이다. 수상 비행기가 도착했다. 원담은 빈 빨대 대롱을 바닥에 내던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안녕 서연! 안녕! 우리의 낙원이 완성되면 다시 올게!’
수상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한 원담은 순조롭게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임무를 완수했다는 만족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굉음과 함께 이륙한 비행기가 안정 고도에 올랐다. 원담은 비로소 긴장을 풀고 스튜어디스에게 물을 한 잔 달라고 부탁했다.
‘따끔!’
모기인가? 스튜어디스가 물을 가져와 건넸다. 물 컵을 건네받는 원담의 손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눈앞도 흐릿해지고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그 사이 종아리를 물었던 뭔가가 허벅지를 물고 아랫배까지 물어뜯고 있었다. 한 군데서 시작된 통증이 두 군데, 네 군데로 늘어났다. 원담의 귀와 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승객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가장 가까이 있던 승객 역시 뭔가에 물렸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은 삽시간에 탈출할 길 없는 지옥으로 변해갔다.
‘여기… 여기가 아니라… 서연… 서연이 있는 모…몰디브… 여야 하는데….’
만신창이가 된 원담의 몸이 의자에 처박혔다. 새카만 그림자들이 숨이 끊어진 원담의 몸 위를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그 위로 조금 전까지 악을 쓰며 펄펄 뛰던 중년 사내가 헝겊인형처럼 쓰러졌다. 원담의 몸을 물어뜯던 새카만 그림자가 그 남자의 몸으로 옮아 붙었다. 잠시 후 균형을 잃은 비행기가 바다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서연의 낙원, 원담의 낙원이 추락하고 있었다.
* 특별히 한 줄 요약 해드림
: 죽은 연인을 위한
낙원을 만들기로 결심한 남자.
남자의 선택이 만들어낸 것은 지옥.
낙원은 추락하고 우리는 멸망하리니.
* '오늘비'의 뱀발 한뼘
: 사랑해도 절대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
인류를 몰살하기,
지구를 폭파하기,
악마를 불러내기,
외계인에 협조하기,
거미 풀어놓기,
특별히 더 주의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혼자 마디푸시 리조트 가기.
(제목 이미지는 '뤼튼AI이미지'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