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첫 승차감은 마치 십 년을 탄 차처럼 익숙하고 부드러웠다, 아빠 운전스타일도 그렇지만 융단시트 때문에 더 부드럽고 스무-스 했던 그날의 시승.
멀지도 않은 거리를 가면서 간식은 왜 그렇게 많이 챙겼을까? 그날 먹은 과자부스러기와 엄마가 싸 온 과일 국물로 인해 보송보송했던 융단은 금방 끈적거리고 버석거리게 되었다.
의자 틈 사이로 손을 넣으면 몇 달 전 먹은 과자와 젤리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던 융단시트의 놀라운 보관능력은 옵션.
우리 삼 남매에 다정하지도 살갑지도 않았던 아빠였다.
하지만 아빠의 엑셀을 떠올리면, 내가 본 남자 중 가장 너그럽고 인내심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소중한 차를 더럽혀도 일생을 한마디 잔소리 안 하셨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아이들은 차에서 과자를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내 인생 베스트 드라이버는 우리 아빠였다. 그 어떤 택시나 버스를 타도 아빠 차만큼 숙면을 취할 수 있는 편한 차는 없었다. 심지어 눈 오는 대관령 고갯길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한 위기에서도 우리 삼 남매는 자느라 몰랐단다. 엄마와 아빠가 두고두고 얘기하는 모험담인데, 너무 들어서 안 봤어도 본 것 같다.
면허를 따고 운전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나에겐 늘 운전이 챌린지다. 특히 초행길을 갈 때는 핸들과 온몸이 밀착되어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더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렇게 덜덜거리며 운전할 때면 항상 아빠의 대관령 서킷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본다.
일흔 중반이 된 내 인생 베스트 드라이버가 늑막염으로 얼마 전 병원에 입원하셨다.
늑막에 물이 가득 찬 상태로 셀프 운전해서 병원 응급실에 가셨다고 한다.아빠의 운전 실력을 진심으로 신뢰하지만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