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미래의 평안을 꿈꾸고 있을까? 더운 여름날 그 바다가 너무나 그립다.
열 살 정도 되었을까?
그 아이는 스스로 눈을 떴다. 누구도 아침이라고, 학교 가야 하니 일어나라고 기상을 외치지 않는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동생들이 곤히 자고 있었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사라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눈을 비비며 여기저기를 찾아보고, 소리쳐 보아도 어른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아이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어린 동생들 앞이라 의연한 척했다.
이 상황이 뭘까?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학교 갈 시간이 가까워져 오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이의 사전엔 결석이란 없다고 결심했는데... 동생들을 두고 학교에 갈 수는 없는 일이기에 답답해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날따라 동네는 고요했다. 모두 하늘로 솟았을까? 아니면 땅으로 꺼졌을까?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은 아이들만 남기고 갱번하러 간 것이었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있어 온 우리 마을의 경제 활동인 바다 일(갱번하는 날)을 인지한 날이 그날이었다. 유레카!!
우리는 어느 날 유레카를 외친다. 내가 처음으로 인지하고 깨닫게 되는 것을 머리가 열리는 날로 기억한다. 그 후 아이는 일 년 중 몇 번은 어른 없는 아침을 맞이했다. 더이상그와 같은 날들이 어색하지 않았고 그런 아침을 두려움 없이 맞이하게도 되었다.
아이의 바다는 풍성했다. 어른들은 아이의 섬에서 바다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섬 앞쪽에는 작은 아기섬 두 개가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딱섬과 딴섬이었다. 그곳은 우리 섬마을의 소유였기에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해산물을 채취하러 어른들이 간 것이었다. 물 때를 맞추다 보니 새벽에 가신 것이었다. 아이들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벌써부터 새벽 갱번을 알아챈 아이들은 어른들이 없는 집에서 나와 부두로 향했다. 게들이 바다 위로 나아 기어가는 것처럼.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해가 떠올라 아이들을 인도했다.
배를 타고 떠난 어른들은 배가 뒤집히기 일보 직전까지 미역을 가득 싣고 저만치서 노를 저으며 다가왔다. 아이들은 반가워 울상이 되었으나 바쁜 어른들의 손은 미역을 바닷가에 푸는 일을 했다. 작은 묘둥을 만들기라도 한 듯 높이 쌓았다. 그리고 작은 광주리를 되로 삼아 마을의 가구 수만큼 분배를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지혜에 놀랐다. 그리고 다 나눈 후에도 공평하게 눈대중, 손대중으로 나눔을 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른들은 자신의 몫을 바닥에 널어놓는 작업을 했다. 가닥을 만들며 미역을 펼쳤다. 그때 배가 고픈 아이들을 위해 미역귀를 뜯어서 입에 물려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맛인지 모르다가 점점 그 맛에 길들여져서 엄마 몰래 미역귀를 뜯어먹다가 걸리면 혼줄이 나기도 했다.
우리 동네 미역은 품질이 좋았다. 육지로 나가면 좋은 미역을 서로 사려고 다툼이 생길 정도였다. 애개미 미역(산모들을 위한 )으로 인기가 있었다. 지금처럼 양식을 하는 미역이 아니고 자연산이었고 무인도에서 자유롭게 자란 미역이었기에 맛이 좋았다. 끓일수록 국물색깔이 뿌옇게 되었고 곰국과도 같이 고소한 맛이 났다.
미역뿐만 아니라 우리 바다의 해산물은 무엇이나 맛이 있었다. 톳, 고동, 파래, 김, 뜸부기, 우뭇가사리, 게, 거북손, 배말, 전복, 등등... 지천에 있던 바다의 먹거리가 당시에는 그 마을의 자급자족하기에 부족할 정도였다. 그 이유는 한 가구당 가족이 많이 있었다. 대가족일 경우엔 10명이 넘은 가족들이 있었기에 그 입을 먹이기에 많은 양이 필요했다.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제야 그 한숨이 이해가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