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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w김정숙 Aug 19. 2024

무슨 꽃을 좋아하나요?

나의 빨간 사루비아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사루비아

섬마을의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중심에 학교가 있었다. 교육을 통해 새마을 운동의 당위성이 전달되었고 뼛속 깊숙이까지 근면 절약 성실이 자리 잡았다. 모든 학생들이 함께 부르는 ‘새마을 운동’ 노래는 군가처럼 신나면서 우리의 정신까지 지배했다. ‘잘살아보세’ 노래를 부를 때는 힘들고 지친 몸들이 벌떡 일어나 더 큰 미래로 달리기 했다. 섬마을은 어디나 비슷했기에 비교 대상이 없어서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를 체감하지 못했으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10년 후 미래의 청사진을 듣고는 두 주먹을 굳게 쥐었다.   


        

나도 그 반열에 들고 싶다는 소망이 꿈틀거렸다. 새벽종 대신에 선생님의 눈에서 발사되는 레이저를 느낀 우리는 벌떡 일어나 새벽 공부를 했고,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이야 된다는 근면의 실천은 밭이나 바다로 일하러 나가신 부모들의 손을 돕고자 동생들을 등에 업고 학교에 나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열이 나서 온몸이 불덩이 같아도 학교에 갔으며, 수업 중에 코피가 흘러도 조퇴를 하지 않고 버티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그 어린것의 마음을 견고히 세워준 것은 정신이었다. 이후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생활신조가 된 것은 ‘최선을 다하자’였다.     


        

특별히 선택된 아이가 되는 날도 있었다.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를 선생님이 주셨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구독자 명단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곳에 아이의 이름이 있었다. 아이는 이미 특별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아이에게는. 그리고 1년 정도 아이 이름으로 잡지가 날라 왔다. 아이는 사기충천했다. 봄날이 다 지나고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할 때였다. 잡지와 함께 동봉된 특별한 것이 있었다.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편지와 함께. 그것은 사루비아 꽃씨였다.          



아이는 꽃씨를 심고 싹이 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도 제 때에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꽃이 피었다. 그 꽃은 아이의 세상, 섬마을에서는 본 적이 없는 빨간색 꽃이었다. 깨꽃처럼 생겨서 더욱 친근했고 아이의 소망을 담은 것처럼 주렁주렁 달려서 신비로웠다. 그 해 여름은 가슴 벅차게 흥분되고 행복했다. 그 꽃은 아쉬움을 담고 서럽게 졌다. 그리고 밑부분에 까맣게 씨앗이 달렸다. 크기는 깨처럼 작았으나 그 모양은 조금 달랐고, 꽃 한 송이에 네 개 정도의 씨들이 사이좋게 있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씨를 받아서 비밀의 장소에 보관했다. 마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아서.         


 

그리고 이듬해 그 씨를 뿌렸다.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서 불멸의 꽃이 되었다. 다시 찾아온  사루비아는 그렇게 아이에게 와서 아이의 꽃이 되었다. 아이의 가장 좋아하는 꽃 이름이 되었다. 특별한 사연과 함께 아주 아름답고 특별한 꽃으로 해마다 이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꽃은 가고 이름만 남았다. 전학을 하게 되면서 사루비아를 데려오지는 못했다. 빨간 꽃잎을 닮으리라 생각하며 가슴에 그 꽃을 심었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섬마을 어느 구석으로 부디 바람 타고 날아가서 아이를 생각하며 싹을 틔우는 정열의 꽃 사루비아가 되기를 바라고 그리워했다.     


 

그 꽃이 한창 붉어질 때, 특별하고 고귀한 국화 같은 분이 속절없이 괴한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아이는 세상을 잃은 슬픔으로 울었다.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 꿈만 같았고 슬펐다. 꿈이 사라지는 상실의 슬픔을 느꼈다. 아이는 아주 특별한 곳에서 그 일을 라디오로 목격했다. 그 라디오로.     



 아이는 일 년 전부터 시작한 펜팔 친구의 초대로 광주라는 대도시를 방문했다. 시골아이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먹는 것도, 자는 곳도, 말투도 달랐다. 친구네 집은 도심은 아니었으나 좋은 집에 살고 있었고 가족들은 친절했다. 눈만 말똥거리며 친구와 친구의 언니들의 손에 이끌리어 시키는 대로 했다. 다음날 친구의 언니는 동물원, 놀이공원에 데려고 갔다. 한마디로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문화충격이었다.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불편했다. 마치 다른 나라에 간 것처럼 어색했다. 순간순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일 년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친구의 사랑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알았기에 참고 또 참았다.     



친구 집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이었다. 친구의 아버지가 선물을 사주신다고 했다. 그것은 라디오였다. 섬마을에는 잘 사는 집에 라디오나 전축이 있었다. 신기하게 여기며 부러워했는데 그 큰 라디오를 선물로 사주신 것이었다. 고마움을 이루 말로 표현할 줄도 몰랐다. 큰 라디오를 켰다. 그런데 처음으로 듣는 뉴스는 육영수 여사의 사망사고였다. 온몸이 굳어버린 듯 움직일 수 없었고, 엉엉 울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멈춰버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불안이 몰려왔다. 친구는 너무나 크게 충격을 받고 울기까지 하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놀라는 기색을 했다. 아이의 사루비아를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하얀 목련꽃 같은 고운 모습이 빨간 사루비아로 남겨질 줄을.    



아이는 8월 15일이 되면 그분이 주었던 꿈을 다시 피우고 싶어 한다. 섬마을, 낙도어린이에게 심어준 자존감 사루비아는 사상이나 이념을 뛰어넘었다. 아주 작은 섬, 낙도의 어린이들도  같은 세상을 평등하게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공평한 빨간 꽃 사루비아 꽃씨로 알게 하심에 감사할 뿐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꽃은 빨간 사루비아꽃이다. 사루비아를 만나면 반갑고 가슴이 뛰고 흥분이 된다.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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