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한동안 글테기가 와서 사춘기 아이처럼 방황했더랬습니다.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아서, 쓰고 싶어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도 글이 나오지 않아서, 한동안 연재를 쉬었습니다. 연재 날짜가 다가오는 것도 부담으로 느껴졌던 날들. 다시 쓰고 싶어 져서 새로운 연재를 기획하고, 기존에 있던 연재 글도 쓰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빼먹지 말고 꼬박꼬박 잘 써보자고 다짐을 하고, 다시 시작.
오늘은 지난 10월 8일에 연재했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을 걷다(1)>에 이어 2편을 써봅니다.
가을이 왔음을, 걷는 발걸음마다 밟히는 낙엽을 보며 느낍니다. 각자의 식물이 가진 잎의 모양과 색으로 바닥을 수놓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 인간들처럼, 식물도 각자의 리듬이 있어 벌써 잎을 떨어뜨리는 식물도 있고 아직 초록색 잎을 달고 있는 식물도 있습니다. 식물들이 서로의 다름을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듯이, 우리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에게 집중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거문오름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학술적, 자연유산적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화산체로부터 흘러나온 용암류가 지형경사를 따라 북동쪽의 방향으로 해안선까지 도달하면서 20여 개의 동굴(김녕굴과 만장굴 등)을 포함하는 용암동굴구조를 완성시킨 근원지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거문오름을 3시간 동안 느리게 걸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용암이 흘렀던 흔적을 보았습니다.
해설사가 열심히 설명해 주셔서 들을 때는 '아~' 했지만, 기록을 해놓지 않아서 지금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요. 이것은 용암이 흘렀던 흔적들이구나, 이곳이 용암이 흘러가기 시작한 근원지이구나, 그 정도만 알고 있어도 성공이지 않을까요.
사람들과 함께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저는 저만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요. 조용한 거문오름을 혼자 산책하듯 걷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한 시간쯤 지났을 때부터 지루해지길래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듣는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 천천히 걸으며 책에 집중하다가, 해설사가 설명할 때는 잠시 멈추고 듣다가, 식물과 풍경 사진을 찍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거문오름에서, 계엄이 났을 때부터 탄핵 때까지 작가의 일기를 훔쳐보듯 들었습니다. 거문오름에서 계엄이라니... 장소와 잘 어울리지 않는 책인가 싶었지만, 장소와 잘 어울리는 작가의 목소리이긴 했습니다.
거문오름 탐방 코스의 끝에서는 억새가 제주도의 억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거문오름의 어두운 녹색과 억새의 흰 빛이 대조를 이루며 묘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어요. 억새밭 사잇길을 걷는 발걸음에 흥이 돋았습니다. 바람 부는 억새 사이를 걷는 상쾌함과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발바닥이 조금 아팠거든요..). 드디어 거문오름 탐방이 끝났습니다. 아직 안 가보신 분들께는 살면서 꼭 한 번은 다녀오시길 추천합니다. 살면서 딱 한 번만 가실 거라면 세 번째 코스를 추천합니다. 저는 다음에 또 간다면 가장 짧은 첫 번째 코스로 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