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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May 14. 2024


"가구는 높이다"

- 短想의 결합

ⓒ 스침


# 굴뚝같았던 마음

- 일이 있어 오랜만에 여의도엘 갔다. 목적지가 며느리 직장이 있는 건물이었지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발뒤꿈치까지 어여쁘건만, 꽃 핀 작은 화분 하나 들고 차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불쑥 찾아가기 뭣 해서 욕심을 접었다. 사람 하는 일이 다 나 좋자고 하는 거라지만 나만 좋자는 건 폭력적이지 않은가. 그 겨를에 뜬금없이 "부모는 애쓰는 뒷모습을 자식에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을 생각해 냈다. 애꿎은 휴대폰만 연신 만지작 거린 외출이었다.    


- 누구였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유명 가구 디자이너에게 가구 디자인을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수준 낮은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그 시절 내 수준이 그랬다.

"가구가 놓일 위치에 높이를 만드는 일이죠."

가구뿐 아니라 건축도 그렇고 사람이 만든 사물에는 기본적으로 '높이'가 만들어진다. 제작 목적에 따라 또 경제 논리에 따라 높이가 결정되어야 다음 단계가 이어진다. 반드시 사물만 그럴까?        

 



ⓒ 스침
ⓒ 스침





# 생각과 마음의 높이

- 아니다. 우리가 품은 생각도 마음도 측량되지 않는 높이를 가진다. 살며 차곡차곡 쌓은 생각과 마음이 얼마의 높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정도의 높이가 되어야 한다는 기준도 없으니 굳이 따져 볼 일은 아니지만 세파에 흔들려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거리를 걷다 뒷짐 진 사람들을 보면,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등이 굽었다고 생각한 뒤로 하네스줄을 잡지 않은 산책길엔 곧잘 뒷짐을 진다. 생각이 자꾸 뒤집어질 때마다 종이짝만큼이라도 높이가 더 해졌기를. 


 


ⓒ 스침
ⓒ 스침


# 시선도 선물이 될까

- 요즘 비가 잦으니 좋은 볕에 더 눈이 간다. 과거에서 온 빛은 우리와 찰나를 마주하고 이내 다른 낯이 된다. 부리나케 카메라를 챙겨 나오면 황홀했던 빛은 더 이상 거기 있지 않다. 젠장, 아름다움은 용량도 부족하고 잘 지워지는 기억에만 저장된다.  


- 시골에서 유년을 보낸 친구들이 텃밭을 가리키며 감자꽃이라 일러준다. 풍족한 시절은 아니었겠지만 그들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 필름 몇 개를 들고 현상소를 가려다 접었다. 몇 통을 서랍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내가 떠난 뒤, 가족 중 누군가에게 나의 시선이 닿은 순간을 선물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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