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침 May 15. 2024

여전히 부대낌

- 깊고 푸른 밤

ⓒ 스침

# 꿈에는 마침표가 없다

- 말과 글은 참 어렵다. 말은 흉기가 되지 않게 조심히 다뤄야 하고, 글은 군더더기 없게 잘 다듬어야 한다. 언제 말문이 트였는지, 글을 익힌 건 몇 살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세월을 거치고도 여전히 부대낀다. 먹고 자는 걸 빼곤 가장 먼저 익혔을 텐데 말이다. 


- 조리 있으되 다정하게 말하고, 쉬우면서 단정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은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많이 읽고 쓰면 되겠지 싶었으나 그렇지도 않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러하다. 


- 생각이 많아지던 차에 최근 어떤 지점에 다다랐다. 어쩌면 말하기와 글쓰기는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대상이 아닐까?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로 설정된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스침

# 매뉴얼 없이 살다

- 그런 생각은 자기 합리화 혹은 심리적 자위일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안달복달하며 허우적대는 것보단 낫다. 나는 조급증이 심하다. 사진을 찍어 브런치스토리에 올리겠다고 생각하고 카메라를 산 지 4개월이 채 안 되었는데 벌써 왜 내 사진은 남들만 못할까 자책한다. 지금 생각을 고쳐 잡는다. 글도 말도 사진도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것에도 마침표란 없으며, 마지막 밥상을 물릴 때까지 하고 있으면 된 거라고.


- 물건을 사고 매뉴얼을 세심히 본 적이 없다. 쓰다 보면 알아지겠지 뭐, 그랬다. 그런 습관은 삶 전체에도 투사됐다. 매뉴얼을 따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남들 가는 길은 신통치 않아 보였고, 그들의 방식은 하찮아 보였다. 그렇다고 특출 나지도 못했고, 이룬 것도 없다. 신기한 것은 그런 내 삶이 나름 소소하게 재미는 있었다는 점이다. 

ⓒ 스침

# 잘 읽은 적이 있는가

- 책과 관련해 큰 착각을 하곤 한다. 원본을 보지 않고 읽었다고 확신한다. 서양 고전이란 것도 잘해야 다이제스트본, 그것도 일어판을 이중번역한 걸 대충 훑고 완독한 줄로 여긴다.


- 그런 내가 요즘 가능하면 독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에세이스트 로버트 풀검의 책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에 기대서가 아니다. 이미 아는 것이라도 실천하고 내 삶이 반영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몇 자 적고 떠나면 그뿐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만약 어린아이를 가르칠 기회가 생긴다면 많이가 아니라 잘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앞으로도 책은 사 모을 것이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일 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이런 시대에 책을 꿰매는 이들이 있으니.

ⓒ 스침


- 최근 책을 주문했다. 윌리럼 블레이크의 그림이 실린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전 3권)>을 샀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완역본을 읽은 적이 없어서이고, 또 하나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천재성을 발휘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애독한다고 해서다. 전생을 이어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이 약관의 천재는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산속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며 살고 싶다"라고 했다. 천진한 그의 눈망울에서 진심이 읽혔다. 

ⓒ 스침
ⓒ 스침
ⓒ 스침


# 병 속의 시간

- 중3이었는지, 고1이었는지 아무튼 귀에 박힌 팝송이 있었다. Jim Croce의 <Time in a bottle>이었다. 세상의 모든 말랑말랑한 것에 눈길을 주던 때라 감미로운 그 노래에 푹 빠졌었다. 내 어미와 동갑인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이태리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대표곡은 1970년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은 그날 그가 만들었다고 한다.

"만약 시간을 병 속에 담을 수 있다면/ 영원이라는 것이 사라질 때까지/ 하루하루를 모아서/ 그걸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어"란 가사는 아내를 향한 그의 지극한 애정의 표현이었다. 

그 노래의 벌스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정작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한들/ 그걸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 난 정말 오랫동안 그것을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알게 된 건 내가 영원히 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다는 거야." 

아내와 가족을 지독히 아꼈던 그는 투어 도중 비행기 사고로 서른 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아내는 사고 이후 "집으로 돌아가면 가수는 그만두고 당신 곁에서 글을 쓰고 싶어"라는 생전 그가 쓴 편지를 받아야 했다.    

이전 28화 "가구는 높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