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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May 17. 2024

형광색

- 주어진 것들

ⓒ 스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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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形

- 단언컨대 빛보다 예리한 칼은 없다. 정교하게 어둠을 발라낸 빛은 세상의 형상을 드러내고, 색깔의 스위치를 켠다. 선잠 깬 새벽마다 목도하는 이 경이로움을 왜 이제껏 외면했던가. 한적한 장소, 우두커니 물러나 앉아 뷰파인더로 빛의 농담을 응시하면 시간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카메라를 든 내게 세상은 형광색, 즉 '형상'과 '빛'과 '색깔'로 구성된다. 보돗이 철든 나이에 렌즈로 보기 시작한 세상은 더 이상 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 스침

# 그들의 시선이 궁금했다 

- 오래전 특수학교 급식 담당 조리사를 인터뷰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인터뷰이를 기다리고 있던 사진작가와 나에게 한 소년이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측되는 그 아이는 대뜸 카메라에 손을 대며 "이거 얼마면 살 수 있어요?"라고 묻지 않는가. 사진작가는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봤고, 나는 아이에게 "사기 전에 먼저 써 봐야지"라고 말한 뒤, 카메라를 건넸다. 아이는 카메라를 받아 들고 연신 웃었다. 


- 며칠 뒤, 대기업의 한 대표이사를 사석에서 만나 그때의 일을 얘기하며 "그 아이들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볼지 카메라를 쥐어쥐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주 뒤 그 대표이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이 카메라를 생산하는 계열사 사장에게 부탁했으니 필요한 수량과 학교 담당자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그 선생님으로부터 당시 최상위 기종의 콤팩트디지털카메라가 아이들에게 전달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후 사진 전시 등의 기획을 구상했으나 추진하지 않았다. 그냥 아이들에게 '반창고' 하나 붙여주었으면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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