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침 Apr 29. 2024

부러진 글자

- 어느 교회 앞에서 

ⓒ 스침

# '바이블'이란 텍스트

- 내게 종교는 '억압'과 '강요'로 요약된다. 부모의 역할을 동시에 했던 편모의 치마는 점집 문지방을 넘나들었고, 외조모를 모신 절집의 천왕문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다 한 대형교회의 신자가 된 어미는 교회 출석을 거부하는 아들을 주저 않고 '사탄(satan)'이라고 불렀다. 그 시기까지 내게 신앙은 폭력의 다른 이름이었다.


- 종교적 편력이 심했던 어미는 집총(執銃)과 군사교육 거부로 제적돼 징집된 아들에게 권력을 이용해 군종병을 권유했다. 신앙심이 없었던 아들은 모친의 제안을 거절한 대가로 다른 형식의 폭력에 노출되어야 했다. 


- 그랬던 내가 성경을 믿음이 아닌 텍스트로 수용한 것은 40대가 되어서였다. 거칠게 표현해 서양 미술과 문학, 철학은 희랍신화와 성경이란 두 축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접근 불가했다. 하지만 성경을 일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로 동네 개척교회에 발을 들인 나는 새벽기도가 시작되기 전 성전에 앉아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한 겨울, 난방이 되지 않은 예배당에서는 김장 비닐을 둘러 쓰고 나무 의자의 한기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통독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이 믿음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 스침





# 세례

- 여전히 교회에 출석하지 않던 나는 언제부턴가 식사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정확한 이유와 시기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그리고 세월이 더 흘러 몇 해 전 나는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 독실한 신자도 아니고 열성적이지도 않지만 나는 내 의지로 신앙을 받아들였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흐름에 순종했다. 종교는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영역이다. 나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타인에게 모조리 설명하기 어렵듯이 종교도 그렇다. 누가 내게 왜 천주교도가 되었는지 묻는다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신앙을 권면하지 않는다. 

     



ⓒ 스침


# 물에 뜬 교회

- 내심, 끝내 한국 국적을 포기 않고 유동룡이란 이름을 지킨 재일교포 출신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의 제주 내 모든 건축물을 탐구하고팠던 건 단지 지적 호기심의 발로였다. 그런데 그의 유작인 방주교회를 찾은 나는 얄팍한 호기심을 바로 접었다. 


- 노아의 방주를 모티프 삼은 그의 마지막 작품은 교회를 비롯한 종교 시설이 위압 대신 위로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 3일 간 요나가 있었던 고래 뱃속을 연상케 하는 예배당에서 나는 성경을 통독하던 개척교회에서의 시간을 떠올렸다. 이 소박한 건축물에서 나는 죽음을 목전에 둔 이타미 준이란 건축가의 진심을 읽었다.    

    

ⓒ 스침
ⓒ 스침

# 'ㅓ'와 'ㅏ' 

- 내게 모음 ㅓ와 ㅏ는 깨진 글자다. 둘을 붙여야 십자가가 되기 때문이다. 천주교도이지만 내게 십자가는 특정 종교의 상징이 아니다. 십자가는 너와 나의 합치이며, 실존의 본질이고, 숙명이다. 부디 우리 각자가 지고 있는 각기 다른 형태의 십자가가 공존과 동행과 연대로 완성되는 ㅓ와 ㅏ의 합치이기를 기도한다.    

이전 24화 최종학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