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침 Apr 23. 2024

배우지 않은 도둑질

- DK에게

ⓒ 스침

# 꽃길만 걸으라고?

- 만약, 나더러 세대 구분을 하라면, 이렇게 말하겠어. 배운 도둑질로 산 세대와 배우지 않은 도둑질로 살아갈 세대라고 말이야. 평생직장은커녕 한 가지 직업으로도 살 수 없게 된 거지. 긍정의 힘을 빌리자면, 어차피 사는 인생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 거 아니겠어?


- 지난번 술자리에서 한 얘기지만, 30대 중반에 걸친 당신은 혼란스러울 거야. 머리로는 다음을 준비해야 한단 걸 알지만 목에 사원증 건 직장인이 어디 그게 또 쉽겠어? 꽃비 내리는 길을 걸어도 조바심 날 테지. 살아보니 말이야, 꽃길을 걷더라도 늘 갈림길이 생기더라. 당황하지 말고 당신이 버린 길을 돌아보지 말고 발밑을 잘 살피고 살면 돼. 발밑이란 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야. 

ⓒ 스침

- 당신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당장 직장 때려치우고 안동에 가서 목수일도 하고, 여수에 가서 뱃일도 배워보라고 말했을 거야. 어떤 일을 하든 터득하는 건 비슷하고 종국엔 유사한 깨달음을 얻게 되겠지만 고작 한 번 살면서 뻔한 삶은 좀 그렇잖아. 내가 못해 본 거라서? 내가 강권해도 당신이 안 할 걸 아니까 술안주 삼아 한 번쯤은 그런 소릴 했을 거란 얘기야. 어떤 부모가 자식이 꽃길만 걷길 원치 않겠어. 하지만 말이야. 세상에 꽃길만 걷는 사람은 없다는 게 문제지.          


- 얼마 전,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의대 가겠다 흰 가운 향한 열망"이 넘친다는 기사를 봤어. 이렇게까지 귀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불타는 세대가 있었나 싶어. 부디 그들이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뒤, 인기 과목의 전공의가 돼서 건물주를 꿈꾸지 않기를.    


- 세상이 온통 '돈'과 '유명세'로 도배되는 걸 보면 안쓰러워. 기성세대는 부동산과 주식에 목을 매고 신세대도 다르지 않아 보여서 그래. 누군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잠자리에 들 수 있으면 그 하루는 잘 산 거 아닌가. 당신도 그런 평안을 누리길. 과분한 걸 움켜쥔 사람치고 편해 보이는 사람 없더라고.


ⓒ 스침
ⓒ 스침

# 거절이 8할이더라

- 지금까지 살고 얻은 통계가 하나 있어. 세상은 직선과 곡선의 결합이지만 삶은 늘 곡선이라는 거지. 그리고 그 곡선은 '8할의 거절'에 의해 만들어지더군. 상대가 거절하고, 세상에 거절당하고, 신의 거절을 경험하면서 곡선으로 살게 되더라. 우리의 경도(硬度)는 그렇게 높아지나 봐. 


-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매력'이었어. 하지만 평생 가는 직업이 없듯 매력도 그래.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지만 길에서 마주친 버스커들은 실력과 무관하게 매력이 넘쳐. 자신의 완성되지 않은 날것의 모습을 불특정 다수 앞에서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얼마나 멋진 매력인지 몰라. 


- 그래서 요즘 "나는 어떤 매력을 장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      



ⓒ 스침


ⓒ 스침



# 이끼와 수치심

- 나무에 이끼가 끼듯 수치심이 들 때가 많아. 종교적, 관습적, 사회적 수치심이 아니라 부쩍 개인적 수치심을 느끼는 때가 많아진 거야. 이래저래 저질렀던 비뚤었던 행동과 판단에 대한 회한이 들어서겠지.


-  당신이야 나보다 월등한 성품과 판단력을 가졌으니 그럴 일이 없겠지만 혹여 나중에 그런 시간이 와도 난 당신이 그 수치심을 정면으로 응시했으면 해. 일말의 수치심도 없이 자기 이익에만 충실한 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말이야. 그럼 조만간 전 잘 부치는 집 찾아 막걸리 한 잔 하세.   




ⓒ 스침










이전 22화 정서적 변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