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필요한 이유
굳건히 자네 길을 지키고 도전하게나. 하루 두 시간은 무모해지게나.
- 폴 고갱
상담을 받았다. 그런데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아야 한단다. 내가 혹여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망설여졌다. 평소라면 생각에 생각만 하다 포기했을 나인데.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번엔 나도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무모해져 보기로 한다. 일주일에 3시간쯤이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앳되어 보이는 남학생 한 명이 나를 보고 고개를 꾸벅한다. 얼떨결에 인사는 받았지만, 내심 '나 선생님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나의 인기척에 원장님이 나오시더니 간단한 상담 후, 취미반 등록을 도와주셨다.
원장님의 안내를 받아 강의실에 들어갔다.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한창 수업 중이다. 선생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림에 열중하던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일주일에 하루만 다녀보기로 하길 정말 잘했다 싶었다. 미술학원에서의 첫 수업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강의실에서 가장 어른이었지만, 그림 앞에선 누구보다 어렸다. 연필 깎는 방법부터 배워야 했다. 능숙한 그림들 사이에서 혼자 선긋기를 시작했다. 명도 10단계와 3점 투시도 연습했다. 연필은 금세 짧아졌고, 어색함 역시 줄어가는 듯했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급격한 집중력 저하로 손이 더디게 움직일 즈음,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도화지와 커터칼, 지우개 가루가 뒤섞인 테이블. 잠시 후, 내 앞에만 다른 준비물이 놓였다. 바로, 고칼로리의 편의점 커피다. 그렇다. 배움에는 때가 있고, 30대는 체력이 없다.
첫 수업이 무사히(?) 끝났다. 스스로가 이렇게 대견했던 적이 얼마만인지. 혼자 연습해 보겠다고 간단히 스케치북과 미술연필, 지우개도 샀다. 취미 하나 시작하면 장비부터 갖추고 보는 고질병. 그래도 초기 비용으로 20,000원이면 꽤 선방이다.
그런데 이거, 너무 재미있잖아? 정말 오랜만에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