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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Mar 02. 2024

한 달의 생김새

12시간이 남긴 것들

우리는 생김새 그 너머를 볼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 문신






"전시회에 초대할게요!"


미술을 시작한 후,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건네는 말이다. 이제 막 연필을 잡은 생초보가 전시를 논하다니, 우스운 언행일 것이다. 10년 전에도 가족, 친구 할 것 없이 공시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그 너머엔 강렬한 열망이 있었고, 준비한 지 1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그럼에도, 그간의 소회를 글로 남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10년을 키보드와 마우스만 다루며 철저히 사무직으로 살아온 나에게, 4번의 수업은 감질나는 미리 보기 정도랄까. 12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선과 표현 그리고 그림의 생김새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안정은 오히려 마음에 찾아왔다. 하루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은 손은 차치하고, 마음을 다독이기에 충분한 아니, 꼭 필요한 시간이었을까.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클 것이라 여기면서도, 마음 한편에 눌러놓은 어그러진 보상 심리는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나 보다. 적어도 작년 한 해가 그러했다. 그 마음은 보기 좋게 무너졌고, 일상의 모든 기대를 놓아버렸던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미술학원에 다니면서부터 다시금 시간이 흐르는 느낌이다. 일주일에 단 하루치의 기대만으로.



기대의 몇 갈래는 의외로 아이들에게서 오는 것들이다. 걱정이었던 아이들과의 수업이 편안해진 연유는 귀여운 아이들과 유머러스한 선생님의 티키타카 덕분이다. 그 무해한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 웃다 보면, 나를 둘러싼 걱정과 고민들이 사소해지는 느낌이랄까.



학원을 다니기 전에는 그림은 팔 할이 손의 영역인 줄 알았다. 소묘는 그 생각을 정확히 한 달 만에 바꾸어놓았다. 표현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확한 관찰’이 그림의 완성도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형태력은 스케치에서, 스케치의 기본은 제대로 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관찰이 필요한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선생님의 시범이다. 선생님의 손끝을 따라가다 보면 스케치를 하거나 선을 쓰는 방법을 엿볼 수 있어 그림을 그릴 때 무척 도움이 된다. 선생님의 코치를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 역시 필요하다. 한동안 나에게 그림은 있는 그대로 보고, 수용하기의 훈련일지도 모르겠다.



보면 볼수록 고칠 것 투성이인 종이컵



많이 웃고,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 삶의 해답은 즐기는 사람에게 찾아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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