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은 자주 깎아야 한다
물방울은 영롱하고 아름답기가 흡사 보석과 같다. 그러면서도 부서지기 쉽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점에선 너무 대조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순한 물방울 이상의 것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 김창열
30대의 결심은 아름답지만, 부서지기 쉽다. 다이어트에 대한 다짐이 그렇고, 나의 결심이 그렇다. 현실과 금세 타협하고 마는 것이 30대 중반의 열정이니까. 마치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물방울처럼.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찾아온 이 설렘이 언제 부서질지 몰라, 나는 그만 말해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 수업이 있는 날. 강의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번 해본다. 나름 씩씩하게 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누구 왔어요!” 나를 발견한 한 학생이 선생님을 부른다. 오늘의 나는 선생님도 학생도 아닌 ‘누구’인가 보다. 뭐, 아무렴 어때.
나는 갈 길이 다르고, 멀기까지 한 것을. 얼른 자리에 앉아 3점 투시로 형태만 잡아두었던 벽돌 그리기를 시작했다. 선 하나에 의심과 또 선 하나에 의심. 그렇게 3시간을 꽉 채워 그려낸 무언가는 선생님의 손길이 닿은 후에야 비로소 벽돌이 되었다.
<내가 몰랐던 세 가지>
- 연필은 자주 깎아야 한다.
- 톤은 확실히 올려준다.
- 지우개로 정리할 수 있다.
톤을 더 올리고, 어색한 부분을 지우며 선생님은 내게 묻는다. “아크릴로 바로 넘어가실 거예요?” 나는 머뭇거렸다. 기본기를 더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막연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되물었다. 내가 대체 뭘 그리고 싶은 건지 선생님은 물론, 나조차도 궁금했다.
어쩌다 이렇게나 뭉툭해진 것일까. 깎아내야 한다. “저는 사실 큰 꿈이 있어요. 언젠가 전시를… 할 거예요.” 너무나도 서툰 고백처럼, 나는 말해버렸다. 그리고 추상을 좋아한다고도. 순간 내 안의 무언가 살짝 반짝인 것 같았다. 그 사이 벽돌은 완성되었고, 선생님은 나에게 잘했다고 말했다.
연필은 자주 깎아야 한다. 내 것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림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