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화가는 그의 마음과 손에 세계를 담고 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세 달 전쯤이었을까. ‘의욕’이라는 두 글자가 내 안에서 완벽히 증발해 버린 느낌이었다. 이토록 생경한 기분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갖은 영상을 돌려보며 침대에 누워있기 일쑤였다. 그런 하루의 끝에 남겨지는 것은 우울감뿐이었다. 나의 세계는 흔들리고 있었다.
문득 나의 삶이 ‘종이접기’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방법대로 따라 접으면 반듯한 모양의 무언가가 되는. 장녀로 태어나 무난한 사춘기를 보내고, 원하던 대학에 갔다. 준비한 지 1년 만에 취직도 했다. 이만하면 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결국 번아웃 증후군이다. 누구나 겪는다지만, 꽤 아프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이 먼저였던 시간들. 어느덧 나는 30대 중반, 10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그 사이 내 안의 종이접기 도안은 많이 낡아버린 모양이다. 시선과 평가라는 틀, 으레 기대되는 모양대로 사는 삶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버크만 진단을 받게 되었다.
관심분야 분석 결과는 무려 예술 99점. 직업적 관심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진로를 잘못 선택한 탓에 이토록 재미가 없었던 것일까? 일순간 후회가 스쳤지만,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의 후회로 그때의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싶진 않으니까. 대신, 스케치북과 미술연필을 샀다.
2024년 시샘달의 어느 날, 내 안의 숨은 그림 찾기를 시작했다. 늦은 만큼 더 충만할 기쁨과 성취를 고대하며. 성취가 없으면 또 어떠한가? 즐기면 그만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시샘하기보다 다가올 나의 봄을 차분히 기다릴 테다.
그렇게 나는 미술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어떤 세계가 열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