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Mar 10. 2024

미술관에 가는 이유

도피에서 사유까지

예술이란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행위의 결과물이다.

- 알베르토 자코메티






습관처럼 미술관을 전전했다. 수고스러운 사전 예약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시 관람은 혼자이면서 고상하기까지 한, 팬데믹 시대 최고의 취미가 아닌가. 다소 도피성으로 시작한 나의 미술관 투어는 2021년, 정상화 작가의 개인전을 기점으로 사뭇 진지해졌다. 그가 보여주는 백색의 두터운 마티에르는 고뇌와 노동의 결과였고, 내가 그토록 닮고 싶은 외유내강의 면모 그 자체였다.



저마다의 이유로 사람들은 미술관을 찾는다. 나는 온전히 나만의 속도와 발걸음에 집중하고 싶을 때면 혼자 미술관에 간다. 단색 추상화를 선호하는 까닭은 그림을 잘 모르는 나에게 기술적인 감상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형근, 박서보 등 거장들의 작품을 볼 때면 괜히 숙연해지는 것은 왜일까. 그동안 접해왔던 구상화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다.



가끔은 짧은 여행을 떠난다. 미술관이 주는 다정함과 겸손함이 좋아서. ‘틈’이 있는 공간들이 대게 그러하다. 여기서 말하는 틈이란 갈라지거나 벌어져 보수가 필요한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사람과 자연을 향한 기회로서의 틈이다. 이러한 공간들은 대게 큰 창이나 거울을 통해 세상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마치 자신의 자리를 양보라도 하는 듯이. 이 얼마나 다정한 행위인가.



제주 김창열미술관 그리고 강화 해든미술관



제주 김창열미술관 그리고 강화 해든미술관의 창가와 외관에 담긴 작년 봄과 여름. 그리고 제주의 또 다른 공간, 수풍석 뮤지엄은 이타미 준이 설계한 명상을 위한 공간 컬렉션이다. 각각의 공간은 자연의 이치대로 색이 변하는 등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이처럼 변모하는 자연의 찰나가 더해진 공간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공간을 탐색하는 일도 미술관의 여러 즐거움 중 하나다.




만일 건축에서 완벽함만을 추구한다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기능으로 다듬어진, 차갑고 무미건조한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 이타미 준



제주 수풍석 뮤지엄이 머금은 빛과 바람



단색화가 보여주는 수수한 외관 너머에 깃든 강인함은 사유의 결과물이라 믿는다. 예술이나 여행을 두루 섭렵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체험 후의 생각을 정립하는 일이다. 나에게 미술관은 다양한 세계를 보고 걸으며 생각할 수 있는 장소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기준이나 시선 따위보다는 내면에 집중하려는 요즘의 내가 꽤 마음에 든다.



이틀간 제주에 다녀올 생각이다. 어김없이 나는 혼자 미술관에 간다.



이전 07화 매운맛 삼다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