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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Mar 18. 2024

자기주도학습

질투가 날 때에는

예술가에 있어서 삶이란 평생에 걸쳐서 불안과 끊임없는 창조를 요구하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 라울 뒤피






그림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샘이 난다. 단지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림과 나 사이 그 방지선이 사라지자 질투가 끼어든다. 미술을 시작하고 보니 세상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존재했다. 그에 비해 나는 잘 그리고 싶은 마음만 앞선 아무것도 아닌 사람. 뭐라도 앞서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비뚤어진 삼다수에 비해 너무나도 분명한 욕심에서 비롯된 이 불안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오늘도 삼다수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한참 음영을 넣다가 삼다수의 비율이 잘못되었음을 감지한 나는 살짝 심통이 났다. 왜 이렇게밖에 그리지 못하는 것일까. 욕심을 내려놓으리라 다짐했던 그 사람은 이제 여기 없는 듯하다. 지금의 결과물이 최선임을 알면서도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초라한 양가감정을 느끼는 데는 이골이 났다. 나의 오래된 습관이랄까. 그나저나 이번 달 안에 그림을 완성할 수는 있을는지. 3월은 삼다수만 그리다가 끝이날 모양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불안은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는 편이 낫다.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충분히 질투하고 심술도 부려보는 것이다. 그러다 지금은 욕심보다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는 자각이 생기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나는 결국 서점에 가서 가장 마음에 드는 데생 기본서를 한 권 사는 쪽을 택했다. 미뤄왔던 공부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의 콘크리트 외관



명작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은 다시 나와는 아주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색채의 여행자 앙리 마티스와 라울 뒤피의 작품들이 머무는 이곳 제주도립미술관에 형용할 수 없는 계절이 찾아왔다. 그림이 마음의 풍경이라면 이들 안에는 끝나지 않는 즐거운 축제라도 벌어진 걸까. 아주 오랜만에 나에게서 어린아이의 시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라울 뒤피와 앙리 마티스의 작품



예술가의 숙명과도 같은 끊임없는 불안과 창조를 즐기는 초월적인 태도는 결코 쉬이 얻어지는 것은 아닐 테다.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어느새 앙리 마티스의 재즈 앞이다. 마티스는 말한다. “나는 항상 내 노력을 숨기려고 노력했고, 사람들이 내가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결코 추측하지 못할 정도로 내 작품이 봄날의 가벼운 기쁨을 가지고 있기를 바랐다.”라고.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흥미진진한 드라마 너머에는 숱한 노력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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