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는 사람
나는 나 자신의 현실을 그린다.
- 프리다 칼로
국화꽃줄기에 자라난 이파리로 시선이 옮겨간다. 자칫하면 꽃잎이 지나치게 어두워질 수 있으므로 손을 대기가 조심스럽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줄기 부분과 함께 이파리들을 잡고 나면 꽃잎은 비교적 그리기 수월해진다. 건네받은 레퍼런스는 이파리들이 얽혀있어 그림 안에서 떼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밝음과 어둠이 적절히 공존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각각의 요소를 알맞은 정도로 어우러지게 할 수 있을까. 명도를 조절하여 형태와 질감을 드러내는 작업은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다. 톤을 올리다 보면 그림은 자주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어딘지 모르게 밋밋하거나, 애먼 힘만 잔뜩 들어가 있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어디 그림뿐이겠냐만은. 변수를 오히려 변주의 기회로 만드는 훈련이 아직 더 필요하다.
작년은 특히나 예상치 못한 변수로 휘청거렸던 시간이다. 여파는 생각보다 길었고, 올해 초까지 일상의 곳곳에 끼어들었다. 하루의 1/3 이상을 보내는 회사가 온갖 군상의 집합체라는 현실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었나 보다. 사람들은 성실보다는 성과로, 진실보다는 가십으로 서로의 입에 오르내리기 일쑤였다. 경력이 쌓이는 만큼 단단해지고자 했던 마음은 단호해져만 갔다.
다만 한 장의 이미지뿐일지라도 국화꽃을 이토록 오래 바라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례식장에서 근조화환 등으로 사용되던 국화는 으레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한 꽃이었으니. 그 생김새를, 의미를 깊이 들여다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국화에는 색깔마다 꽃말이 있는데 하얀 국화는 성실과 진실을 의미한다고. 수수하면서 단정한 아름다움과 잘 어울리는 꽃말이라 여겨졌다.
성실과 진실에는 향기가 있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의 가장 성실했던 시절을 지켜본 이들과 여전히 함께인 이유다. 잠시 내려놓았던 연필을 들어야 할 시간이다. 내 그림에서는 주위의 것들과 은은한 조화를 이루는 향이 나면 좋겠다. 소묘에서 어둠 옆에는 반드시 밝음이 있고, 밝음은 어둠 곁에서 가장 빛나지 않은가. 보조 선생님은 꽃잎이 지금보다 밝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고쳐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