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삶

by 강민경

몸이 스러질 땐 삶에 막이 씌워진다

막이 씌워지면 눈앞이 막연해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모두 보이지 않는다

몸뚱이는 수명을 연장하듯 산다

나의 정신은 그저 몸뚱이를 따라갈 뿐이다

숨만 쉰다

삶의 목표가 사라진다

그저 숨이 붙어있으니 산다

숨이 가빠져온다

숨을 내쉴 뿐 들이마실 이유가 없으니

숨이 가빠져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불필요한 몸의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고

불필요한 노폐물이 때에 따라 배출되면

떨어져 나간 몸의 빈 곳에 틈이 생긴다

그 틈으로 들이마실 호흡으로 들어찬다

들어찰 공간이 있으니 숨이 잘 쉬어진다

매시간 과호흡이던 삶이 안정되면

막을 바늘로 찔러 터트릴 힘이 그제야 생긴다

짧은 순간, 번쩍이는 힘으로 막을 터트리고 나면

그제야 나를 지탱하던 것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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