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지하철 옥수역에서 만취한 여자를 발견한다. 어딘가 이상한 여자를 관찰하던 남자는 실시간으로 커뮤니티 사이트에 그 상황을 생중계한다. 온몸의 관절이 꺾인 듯 휘청거리다가 벽에 이마를 부딪힌 여자는 피를 흘리며 선로 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남자는 여자를 "보러 간다"는 말을 남긴 채 함께 사라져 버린다. 다음날 두 사람은 자살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웹툰 옥수역 귀신 中
실제로 지난 2009년 2월 14일 오전 5시 39분께 김 모 씨(38)가 서울 성동구 응봉역에서 옥수역으로 진입하던 중앙선 전동차에 치여 숨졌고, 이를 수습하러 온 병원 장례 관계자 김 모 씨가 시신을 수습하던 중 열차에 치어 숨진 사건이 있었다. -출처 : 이뉴스투데이(http://www.enewstoday.co.kr)
많은 공포영화들이 하하 호호 웃는 즐거운 장면, 혹은 평범한 일상씬으로 시작해서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는 장면을 포착하곤 한다.
우리도 그랬다. 엄마가 평생을 바닥부터 일궈온 탁구장은 내가 취직할 무렵과 맞물려 조금씩 잘 되어가고 있었다. 회원도 점점 늘어났고 코치였던 엄마의 고정 팬층이 생기면서 엄마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고 했다. 주부 회원분들이 손수 만들어 보내주신 음식들이 냉장고에 그득해 매일 반찬을 만들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은 웹툰보다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웠다. 엄마 탁구장 바로 맞은편에서 추어탕집을 운영하던 사장 부부가 회원 명단을 요구하더니 급기야 바로 옆에 탁구장을 차리고는 기존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회원들을 빼돌렸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부부는 사람들에게 식사도 대접하고 엄마가 운영하는 탁구장을 흠집 내는 말도 전했다고 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순진했던 엄마는 그 과정에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예기치 않게 엄마가 확진되면서 우리 집은 눈물 바람이 되었다. 이제 돌이켜보니 그 사람들이 발병에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닌가 싶다.
화를 내고 따질 겨를도 없이 수술을 비롯한 항암 치료 일정이 빠듯하게 흘러갔다. 그나마 운동을 꾸준히 했던 엄마는 특유의 체력으로 종양 제거 수술과 항암 치료를 잘 견뎌주었다. 수술 후 얼마간 병원에 머무르던 엄마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외래 치료도 가능해졌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체력이 회복되자 가장 먼저 탁구장을 찾았다.
당시 우리 집은 하필 옥수역 근처였다. 집에서 탁구장까지는 지하철로 30분 정도가 걸렸다. 엄마는 당신의 일생과 애착이 담긴 탁구장으로 그 거리를 매일같이 통근하고자 했다. 자존심 강한 엄마 의사를 존중해서 홀로 가게 해주는 것이 나은지 그래도 누군가가 매 번 먼발치에서라도 따라다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큰 수술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시기여서 엄마와 늘 동행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한사코 거절했다. 치료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부담을 준 것이 싫었던지, 엄마는 뭐든 혼자 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어린아이가 부모와 떨어지는 데 불안을 느끼듯 당시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엄마가 쓰러지는 것이었다. 옥수역 귀신 웹툰에서 보았던 거대한 손이 꿈에도 등장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흉흉한 소문이 돌던 옥수역으로 엄마를 보내는 마음은 못 미덥고 불안했다. 첫 학교에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된 교사로서 내 일을 익히는 데만도 역부족이었지만 일터에서도 촉각은 항상 엄마를 향해 곤두서있었던 것 같다. 당시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은 생경해서 지금까지도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왜 그때 나는 내가 느낀 두려움을 직면하고 그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할 수 없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엄마를 마냥 환자 취급하면 안 그래도 가장 힘든 상황을 겪고 있을 엄마가 무너질까 봐, 내 두려움이 엄마에게 전이될까 봐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나는 공포에 잠식되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오랜 시간 곁에서 엄마를 지켜보며 함께 걷고만 싶다. 엄마가 사랑해 마지않던 탁구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