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걱서걱
빨간 색연필이 종이에 닿아 동그라미와 빗금을 그린다. 한 단원을 마치고 중간 점검을 하는 단원평가 날이다. 잠시 쉬는 동안에도 허공에 동그라미가 둥둥 떠돌아다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채점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틀리는 문제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휘의 뜻을 묻는 것처럼 비교적 단순한 문제는 대부분 맞추는 반면, 보기가 전부 영어인 문제는 오답률이 대폭 상승한다. 모국어가 한국어인 중학생들에게 외국어로만 구성된 문제가 얼마나 어렵게 다가갔을까 이해가 되기도 한다. 시험이 끝난 교실은 답을 확인하면서 기쁨의 탄성을 지르거나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는 아차 싶었던지 주변을 살피는 아이, 울상을 짓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외국어로만 이루어진 시험지를 앞둔 학생처럼, 나는 처음 겪는 엄마의 확진과 투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자존심 강했던 엄마가 옆 병실의 아이스크림을 탐내는 모습을 보며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기도 하고, 힘들다는 핑계로 아픈 엄마에게 라면을 먹이기도 했다. 일과 간병을 병행하며 지치고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엄마를 대한 기억도 있다. 낯뜨겁고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기억들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오지선다형 문제보다 더 어려웠던 선택의 순간들을 당시보다 더 잘 풀어낼 수 있을까. 시험이 끝난 뒤 오답 노트를 정리하는 아이들처럼 나는 당시의 기억들을 반추한다.
권여선 작가는 '비극이 찾아왔을 때'를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스물 두살에 죽은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함께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던 그 친구가 '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해서 부끄럽게 죽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을 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죄책감이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혔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조언한다. 깊은 상실이나 이별의 순간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자책하지 말라고. 자책이란 이미 다가온 비극만도 엄청난데 거기에 가공의 비극을 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계속 후회하고 '나 때문에'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자신이 다 짊어지려는 오만일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햇빛, 꽃 등의 감각을 다 죽일 순 없으며 그런 감각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는 것, 삶 자체가 유일한 희망의 가능성이라는 작가의 말이 나를 일으켰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나는 스스로를 처벌하려는 사람처럼 즐거운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왔던가.
작가의 조언에 따라, 나는 엄마의 생명이 가졌던 의미를 반추하고 기억한다. 엄마가 있었기에 한 남자는 아빠가 되었고 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내가 살아 숨쉬고 있다. 비록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갔지만, 매일 탄성을 지르며 뛰어노는 나의 아이들도 그녀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메달을 건 채 3관왕 타이틀을 달고 신문에 실렸던 엄마를 기록하는 기자에게 엄마는 하루의 일감을 제공했을지 모른다. 탁구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는 열정적인 선생님이었으며 일에 지친 직장인과 주부들에게는 활력소가 될 취미를 안내해주는 코치였다. 먼지 쌓인 앨범 속 엄마는 계곡에서 카메라를 향해 물을 뿌리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엄마도 생의 어떤 순간에는 찬란히 행복했다는 사실, 그 희열을 복기하는 과정이 위로가 된다.
아픈 엄마와 함께 한 시간 동안, 그리고 상실의 시간 이후에도 나는 후회와 자책과 무기력이라는 매력적인 오답에 눈이 멀어 정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신의 출제의도가 무엇인지 헤아릴 역량을 갖출 턱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동굴 속에 숨어 자책하고 후회하는 오만을 부리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슬픔을 나누는 연대가 필요했다는 것을, 아픈 엄마뿐만 아니라 지친 스스로를 보듬어주는 마음도 필요했다는 것을, 때를 따라 삶이 선물하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기쁨이 찾아올 때는 그것을 만끽할 수 있는 권리를 누려야 했다는 것을.
혹여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삶의 불가항력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비정함 앞에서 나는 또 다시 비틀거리며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런 날이 온다면 지금 적고 있는 이 오답노트를 들춰봐야겠다. 답을 모르는 시험 문제같던 생의 국면 앞에서 쩔쩔 매던 과거보다 조금은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