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리상상 Sep 27. 2024

간병인이 된 가족들에게

이선생님께 드리는 밤편지

선생님, 안녕히 지내고 계신지요.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습니다. 가을마저 선뜻 다가올 수 없던 그 뜨거움에 많이 지치신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늘 맡은 일들을 똑소리나게 척척 해내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런 선생님이시기에, 부모님께서 아프시다는 소식에 얼마나 부단히 마음을 쓰셨을지 눈을 감아도 그려집니다. 좋다는 병원을 찾고, 부모님의 집을 정갈하게 청소하고,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옆에서 돌보며 말할 수 없는 마음앓이를 하셨겠지요. 


실은 선생님께서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마음 한켠이 슬프고 무거웠습니다. 선생님 어깨에 올려진 무거운 책임감과 발자국마다 놓인 긴 한숨을 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지리한 간병의 자리를 지키며, 약해진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속상하고 막막하셨을지 감히 어림짐작만 해볼뿐입니다. 


10년전 이맘때 저 역시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가는 엄마를 보면서 그런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덜 불편하도록 병상을 지킬때 제게 민첩한 손길을 허락해달라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인 노릇을 이어갈 수 있는 인내심을 달라고, 환자가 된 엄마가 짜증을 부릴 때 넉넉히 받아줄 수 있는 여유를 달라고 말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면서도 뭐가 그리 서럽고 억울했는지 누가 툭 치면 터져버릴것만 같이 불안하고 흔들리던 기억도 납니다. 그만큼 엄마가 제게 큰 존재였다는 증거겠지요. 


선생님도 역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때로는 오열하며 무너지고 어떤 날은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다가 또 소진되기도 하실거라 짐작해봅니다. 혹여 그렇다 해도 부디 완전히 소진되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많이 힘들다는건 어쩌면 선생님이 부모님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뜻일거고, 그만큼 사랑받으며 지내왔다는 의미일테니까요. 아프시지만 부모님이 곁에 계시고 만질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으니 저는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선생님, 점점 닳아져가는 기억 속에 저조차 선생님의 상황과 마음을 고스란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혹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면 서로 마음을 나누며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그러지 못했던것이 후회가 되어서요. 그런 모임을 외면했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아쉬운 부분입니다. 아픈 가족을 가진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정보가 있었을텐데 그때는 너무 여유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현실을 직시하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커피 한 모금이, 해질 무렵 산들바람이, 곁에서 이야기를 나눌 한 사람이...그렇게 소소한 기쁨들이 쌓여 다시 선생님이 내일을 기대하실 수 있게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루에 한 순간만이라도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하고 행복해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이 절대로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한창 무기력에 빠져있던 제게 용기를 주신 분이기에 저도 두렵고 떨리지만 힘을 내어 부족한 글이나마 전해봅니다. 그토록 뜨겁고 치열했던 여름도 가려는지 이제는 밤공기가 선선하네요. 부디 용기를 잃지 마시고 이 밤만은 쉼이 있기를, 잠시라도 평안한 잠을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