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머물다 간 기적에 대하여
이 이야기를 처음 글로 쓰기 시작한 건 친구 언니의 유방암 이야기를 듣고부터였다. 얼마전 다시 만난 그녀에게서 완전관해라는 단어를 배웠다. '완전관해'란 의학 용어로, 암이나 만성질환과 같은 병의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 소식에 오랜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기적도 일어날 수 있구나 싶었다.
내 삶 역시 돌아보면 기적 아닌 것이 없다. 시궁창같게만 느껴지던 현실을 한 걸음쯤 뒤에서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되고 그로 인해 지인에 불과했던 사람들과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도, 생면부지의 독자와도 시공의 한계를 넘어 그런 작은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음도 내게는 모두 기적과 같은 일이다. 반쯤 왜곡된 안경을 끼고 현실을 허상처럼 간신히 더듬으며 우울의 심연을 헤매던 그때가 이제는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최근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읽었다. 표지에는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 근력의 힘'이라는 부제와 함께 트램펄린에서 튀어오르는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저자는 회복탄력성을 소개하기 위해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자란 아이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최악의 성장 환경 속에서도 높은 회복탄력성을 보인 아이들의 공통점은 그들 곁에 사랑과 신뢰를 보내준 어른이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었다는 것이다.
나를 안고 입맞추던, 비장한 표정으로 따각따각 탁구를 치던, 때로는 지겨운 잔소리로 나를 압도하던, 나를 웃게 해주던, 함께 병원 탈출을 시도했던, 내 앞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던, 사진 속에서 내게 물을 뿌리며 환하게 웃던, 나의 엄마. 엄마가 내게는 그런 어른이었다. 이제야 고백한다. 그 한 사람이 내 유년기를 쓰다듬고는 한참을 더 힘을 내어 내 곁에 머물다 간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음을.
미약하나마 기도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크고 작은 기적이 하루하루 깃들기를. 그 기적에 대한 바람과 추억으로 또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