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침몰하는 배 위에서 바라본 별,하늘
내 인생 첫 영화는 타이타닉이었다. 영화관에 처음 가는 경험이 낯설지만 신기하게 느껴졌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라고 해서 더 설레고 기대됐던 것 같다. 지금도 그때도 단짝 친구인 민혜와 나, 그리고 엄마와 엄마 친구 이렇게 여자 넷이 영화를 함께 보게 되었다. 당시 타이타닉이 엄청난 흥행을 거둔 탓에 네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나와 친구, 엄마와 엄마 친구는 둘둘씩 각기 다른 자리에 떨어져 앉게 되었다. 상영이 끝난 뒤 군중을 헤치고 겨우 엄마를 만났는데 엄마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엄마 왜 울어?"
"별이 너무 예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별이 총총히 떠있는 밤하늘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얘기한 것 같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타이타닉 호는 초호화 여객선으로 그 곳에 우연히 승선하게 된 낮은 신분의 남자 주인공 잭과 귀족 출신이지만 몰락한 가문의 딸 로즈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빙산 충돌 사고로 배는 점점 가라앉고 두 사람은 추운 바다 위에서 판자 하나에 의지해 버티지만 마지막 순간 잭은 로즈를 위해 희생하듯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음이 움직였다는 엄마와 달리 내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침몰하는 배 위에서 마지막까지 악기를 연주하는 현악 4중주 악사들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그들은 승객들을 위해 침착하게 'Nearer My God to Thee'를 연주한다. 이 곡과 점점 물이 차오르는 타이타닉을 배경으로 죄책감에 항해실을 떠나지 못하는 선장, 침대 위에서 서로에게 입 맞추는 노부부, 잠자리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 등 죽음을 맞이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방식들이 등장한다. 현악기가 자아내는 유려한 선율이 처연하면서도 무게있고 슬프면서도 경건했던 기억이다. 연주를 시작했던 악사는 다른 연주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인사를 건넨다.
"Gentlemen it's been a privilege playing with you tonight."
(여러분, 오늘밤 당신들과 함께 연주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영화관을 가득 채웠던 인파가 거대한 물결처럼 섞이고 밀리며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나와 엄마는 서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같이 영화를 봤던 민혜와는 손을 꼭 잡고 있어 함께였다. 한참을 찾아봐도 어른들을 발견할 수 없던 우리는 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있던 비상금 몇 푼을 믿고 근처 지하철 매표소로 향했다. 몇 정거장 안되는 길이긴 했지만 난생 처음 지하철 표를 사서 우리 힘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뿌듯했다. 빳빳하고 노란 직사각형 승차권의 촉감이 아직도 선하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 이 땅에서 엄마와 헤어진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장례식장까지 찾아와 3년쯤 지나면 차츰 괜찮아진다고 위로해주셨던 부장님마저도 이제는 별이 되었다. 엄마도 저 밤하늘 어딘가쯤 빛나고 있을지 모른다. 그 때 영화 관람을 마친 엄마가 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고 울었는지 나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또 그 때의 나를 반추해본다. 타이타닉처럼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늘 바다를 누빌 것만 같던 엄마가 서서히 침몰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너진 그녀를 잠잠케 할 노래를 연주하는 악사는 되지 못했다.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잘 표현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영화관에서 엄마를 잃은 어린애처럼 떨다가도 언젠간 그때처럼 다시 찾아갈 수 있으려나. 엄마를 추모하는 이 글이 그 흔적이라도 더듬어 찾을 수 있는 지하철 표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