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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센트 Feb 16. 2024

여름날의 에세이

아픔 - 응급실

지난여름, 6월에 난 오랜 지인을 통하여 하청업체 소속으로 대학병원 내 응급실을 담당하는 야간 보안 요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디자인과 마케팅을 주로 해왔던 나에게 있어 보안이라는 업무는 낯설게 느껴졌다. 어두운 밤에 일하면서, 낮에 외진을 못 보거나 아파서 급하게 오는 사람들, 마음이 아파서 오는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과 작별하기 위해 자신에게 해를 끼치다가 실려온 사람들조차 응급실에 많이 온다. 나는 지금까지 아픈 사람들과 슬픈 사람들의 감정을 공감하고 공유해 왔다. 그런 아픈 사람들을 많이 보아하니 그 사람들의 서러움, 환자를 간병하고 있는 보호자들의 슬픔과 막막함을 많이 봐왔다.


한 번은, 의료진의 호출로 현장으로 지원을 나가서 자신의 실수로 인해 다친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온 부자를 만났다. 의료진께 상황을 들어보니 진료 지연으로 인한 보호자의 불만이었다. 이 때는 나의 첫 근무날이자 첫 지원이었다. 처음으로 지원 가서 당황했지만, 난 침착하게 아이의 아버지를 친절하게 응대하여 그의 불만을 진정시키고 얘기를 들어주었다. 아이가 다치게 된 상황을 들어보니 부부싸움을 하다가 몸싸움으로 번져 물건을 던졌더니 아이의 귀를 맞아서 찢어졌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 눈치를 보더니 난 그에게 말을 하였다. “저는 괜찮아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는 안심하듯 나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조선족으로 추정되는 말투로 내게 말을 하였다. “내 행동으로 인해 내 자식이 다쳤다고 생각하면 온 세상이 무너졌다 생각했소.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소.”라고 얘기했다. 난 그에게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고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버님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같아도 같은 마음이에요. 하지만, 다음부터 안 그래야겠다 다짐하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주시면 됩니다. 지금은 진료에 집중해야 해요. 진료가 끝나면 아드님께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분명 이해해 줄 겁니다.” 그는 울면서 나에게 자신의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계속 인사를 건넸다. 그날 왔었던 부자를 보고 느꼈던 점은 우리 부모님도 예전에 싸우셨을 때마다 몸싸움으로 번진 경우가 많았었다. 몸싸움으로 번진 경우가 많았었다. 그때마다 이유 없이 혼나고 아버지의 불 같은 성격에 두려워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다음 날이 돼서 우리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셨다. 그때 당시의 나는 아버지의 사과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증오의 감정이 눈덩이 굴러가듯 커져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이의 아버지의 슬픔 속에서 그때 당시, 내 아버지도 그와 똑같이 죄책감이 컸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증오의 감정만 채운 나 자신을 원망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사건 이후로 난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근무한 지 일주일 만에 생긴 일이었다. 휴게시간이 끝나고 근무지에 돌아가던 도중에 생에 처음으로 싸늘해진 주검을 직접 봤다. 실크 재질인 듯 한 부드러운 천에 감싸인 주검을 보며 슬퍼하는 유족들의 슬픔을 직접적으로 들으니 그들의 슬픔과 상실감 그리고 허탈함은 내 마음속 어딘가 남겨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떠나보낼 때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러한 상황이 한동안 하루에 두, 세 건이 생기자 어느 날부터 밤에 누가 놀라게 할 때마다 주저앉고 평소보다 더 심하게 놀라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지금의 내 상황을 설명해 주었더니 걱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당차고 적극적으로 행동해 왔던 나 자신이 점점 망가지고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트라우마 마냥 한 동안 일에 집중도 못하고 지원 나갈 때나 안내를 할 때마다 소극적으로 응대하는 일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그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어떠한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 속에 깊이 슬퍼하는 보호자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있다.


응급실은 항상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온다. 보안 업계에서 최악의 근무지 중 하나가 병원이라고 한다. 업무의 난이도나 급여 그리고 인식 등 많은 이유가 있다. 주변에서 나 자신을 소개할 때 응급실 보안요원이라고 하면 ‘많이 힘들지 않나요?’ 혹은 ‘고생 많아요’라는 말이 대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감안하고 응급실에서 계속 일하는 이유는 환자와 보호자 즉, 내원객들의 아픈 마음과 슬픔을 통해 지금까지의 나를 되돌아보면서 고쳐야 할 부분과 개선해야 할 부분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오늘도 난 응급실의 밤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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