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을 채우려는 만남
그 시절의 제 모습을 떠올려 보면, 직장 동료나 학교 동기들과 자연스럽게 맺어진 관계가 아닌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많은 사람들을 어플을 통해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약 스무 명에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중에는 매주 주말마다 얼굴을 볼 만큼 가까운 사이도 생겼고, 그 당시엔 "이 사람들과 앞으로도 오래 가겠지"라는 기대도 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그런 기대와는 달리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관계에 대한 피로감이었습니다. 이 만남들은 직장 동료나 학교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었기에, 매번 새롭게 약속을 잡고 시간을 맞추며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했습니다.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기 위한 노력도 늘 필요했지요. 어플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유학이나 취미생활처럼 분명한 공통의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친구할 사람"을 찾기 위한 만남이었기에 관계를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특별한 목적 없이 "친구"라는 타이틀로 이어진 만남들은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저희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술을 곧잘 찾았고,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술친구가 되어버렸지요.
사실 처음엔 기대감이 컸습니다. "이 사람들 모두와 잘 지내보자"는 마음으로 그들을 제 삶의 일부로 끌어들이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일 얼굴을 보는 직장 동료나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학교 친구들과도 가까워지기 어려운데, 새롭게 만난 사람들에게 같은 기대를 둔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 갔습니다.
또한, 저희는 모두 마음속에 '결핍'을 지니고 있었고, 그로 인해 서로의 우울감을 공유하며 친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에서부터 아픈 가정사까지, 서로의 빈 부분을 새로운 만남을 통해 채우려 했던 것이지요.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슬픔을 이해해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저도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나 싶네요. 하하.
물론 "나 우울해!"라고 직접적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눈에 보이는 자해의 흔적이라든지, 약을 복용 중이라는 고백 등이 오가며, 묘하게 슬픔의 무게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어플을 통해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저처럼 친구를 사귀는 것이 목적이 아닌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들 어떤 뜻인지 감이 오실 것 같아 자세히 적지는 않겠습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제 노력이 한계에 다다르니 관계도 자연스레 끊기게 되었지요. 특히 초반에 아무리 매주 만나며 가까워졌다 해도, 시간을 두고 서서히 알아갈 시간이 부족했던 탓인지 점차 허무함이 찾아왔습니다. 진심으로 노력했던 관계였기에 더 아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아무리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 애써도 둘은 날 싫어하고 일곱은 관심이 없으며 하나는 나를 좋아한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살면서 몇 사람은 흘러보내고, 몇 사람은 곁에 남게 되는 게 인생이라 합니다. 나이가 들면 각자 생활에 바빠지고, 가정이 생기면 그 가정을 돌보느라 자연스레 멀어지더라구요.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벗이 셋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니까요. 이렇게 떠나보내는 법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겁지만, 이제는 억지로 노력해가며 만들어가는 인연이 아닌 자연스레 찾아오는 인연이 기다려집니다. 떠나간 사람들과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인연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않고, 흐르는 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모든 인연이 오래 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때 좋은 추억을 함께 나눈 사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각자의 자리를 빛내며 살아가는 모습이 더 반가울 테니까요."
바로 다음 글은, '짧았던 만남, 길게 남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