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아지트를 보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책이 좋아서 조그마한 가게를 시작했지만 막상 책방아지트 대표로 살아가는 일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상상해본 적이 없는 세계가 쏟아지는 난감한 상황들이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초보 대표라는 한계를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그나마 좋아서 하는 일이라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말(言)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책방에는 오는 손님들은 다양했다. 다양한 손님들만큼이나 요구하는 것도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만한 노하우가 많이 부족했다. 손님이 말하는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짐작하기가 어려웠으니까. 당연히 손님을 응대하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손님이 요구하는 것을 떠듬떠듬 말하다가 어느 순간 내가 어쩔 줄 몰라 답답할 지경에 이르면 손님 또한 무척이나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날이 경험치가 쌓이면서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숨 막혔던 마음의 부담감이 홀가분해졌다. 손님을 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마음의 걸림돌은 사람과 사람이 뱉은 말이 꼭짓점에 도달해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손님과 뜻하지 않게 오해가 겹치면서 말이 칼이 될 때가 있다.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진실과 오해의 싸움이라고 할까.
싸움의 순간, 중요한 것은 말의 태도가 좌우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말이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이다. 당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진실하게 듣는다. 하지만 자기 말만 속절없이 늘어놓는 사람은 ‘디미니셔(Diminisher)’이다. 상대방에게 겉도는 말을 해서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말을 건성 건성으로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성의 없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나는 가능하면 손님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더더욱 회사 일처럼 사무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겸손한 태도로 손님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방아지트를 운영했다. 손님과 진심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공감하는 겹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서로에게 말에 걸맞은 응답을 하려면 일루미네이터가 되어야 한다. 일루미네이터는 당신을 향한 불빛이며, 당신이 미처 몰랐던 살아 있다는 소소한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소소한 기쁨에 온기(溫氣)가 감돌면 당신을 빛나는 존재, 최고의 존재로 변화시켜 준다. 생각해보면 일루미네이터는 당신에게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소중한 인연은 분명 서로에게 착한 마음으로 반짝인다.
그런데 일루미네이터가 보통 사람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바로 우리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카리스마(Charisma)’가 강력한 사람이다. 사전적 의미로 카리스마는 ‘재능’, ‘신의 축복’을 뜻하는 말인데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로 다른 사람을 매료시키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카리스마의 위대함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늘 카리스마를 꿈꾸며 살아간다. 카리스마를 성공한 사람의 대명사라고 믿고 있다. 이는 곧 성공이라는 단어를 곱씹을수록 카리스마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은 사람과 관계를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성공과 행복의 제 1조건이 뭘까?”라는 익숙한 물음을 던진다. 그러면서 대답하길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세요”라는 것이다. 존중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강조하는 데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뒤집힌 카리스마’라는 단어 때문이다.
이 단어는 유명한 소설가 E.M.포스터의 전기를 쓴 작가의 메시지에 담겨 있다. 작가는 포스터와 대화를 나누면서 뒤집힌 카리스마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내 말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나 자신이 가장 정직하고 예리하며 최상의 인물이 되는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포스터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작가는 존중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작가는 무척이나 행복해서 인생의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고 했다.
가끔씩 책방아지트에 와서 격려와 응원을 해주시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소울메이트이다. 각자 사는 곳이 달라도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다. 겉보기에도 평범한 사람들이라 카리스마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소박한 그들이 왠지 좋았다. 그들에게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얼굴은 모난 데 없이 겸손하다. 삶의 고단함이나 외로움을 찾을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만의 얼굴이었다.
뒤집힌 카리스마!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책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뒤집힌 카리스마 같은 책이다. 내가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단지 열심히 읽는 것으로는 곤란하다. 책을 읽는 것이 쉬워 보여도 몸과 마음을 다해야만 하는 고되고 어려운 일이다. 사람과 책, 서로가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카리스마가 없는 책을 펼치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도 없다. 책도 비슷한 거리감으로 카리스마가 없는 사람에게 뒤집을 까닭은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