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밤하늘 한쪽 끝을 가리켜 북두칠성이다,라고 엄마가 말했다. 순간 몇 개의 별들이 반짝였던 것 같다. 나는 침침한 눈을 비비며 희미한 별빛을 쫓았다. 하늘에선 분명 빛을 뿜고 있는데도 내 눈은 별빛을 구분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가로등 그림자는 회색에서 먹색으로, 등불이 못 미치는 공간은 짙은 어둠으로 변했다. 그런 어둠에서는 물체들이 엷은 선으로 테두리를 둘렀다. 결국 어둑한 하늘에서 무엇이 빛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가리킨 대로 저기서 빛나는 게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잘 보이지 않는 걸 알려주는 건, 그 존재가 어떤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기쁨이나 슬픔까진 아니라도, 적어도 기분을 전환시킬 스냅사진처럼 각인시킬 수 있을 테니까. 다만, 보이지 않는 걸 알아채기 위해선 가까이 들여보거나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일상이란 것도 쉽게 들여다볼 순 없어서, 상대방 눈을 통해 어떤 일상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상대방에게 다가가 눈을 맞춰불편하거나 필요한 게 없는지 묻고 살펴야 한다.
서로의 일상에서 각별했던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를 통해 더 근사한 건 없었는지 되짚고, 고루한 시간을 보냈다면 밝은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던 하루라고 상기시킨다. 그렇게 일상의 마디를 함께 엮다 보면, 혼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눈에 띈다.
일상의 불투명한 것은 햇살과 그늘 틈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호색을 띠고 있는 카멜레온처럼, 뚜렷한 무늬를 버리고 주변 풍경 속에 묻혀있다. 얼핏 몸에 난 상처도 그랬던 것 같다. 어떤 연유로 상처가 생겼는지 돌이킬 틈도 없이, 돌보지 않은 상처는 살과 뼛속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작은 티눈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모세혈관까지 점령한 사마귀인 걸 알고 제거하느라 애 먹거나, 시린 이를 치료하러 갔다가 치아에 박힌 점이 신경까지 건드린 충치임을 진단받는 것처럼, 대개 상처는 뚜렷한 아픔을 느낄 때까지 은신한다.
나는 겨울보다 여름을 좋아하지만, 여름마다 극성을 부리는 무좀은 곤혹스럽다. 수십 년간 동거 중인 무좀을 떨쳐내려고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도 소용없었다. 발바닥에 땀이 찰 때마다 작은 물집들이 생겼다 터졌다를 반복했고 극심한 가려움과 통증에 시달렸다. 작년 후쿠오카 여행 이후 덧난 상처는 낫질 않고 심각해졌다. 살갗이 벗겨지고 갈라지면서 진물과 핏물까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간만에 만난 친구가 내 걷는 모습을 보더니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고, 나는 사정을 말하다가 어차피 낫지도 않는 것이라며 얼버무렸다. 내 발 상태를 확인한 친구는 도저히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개원한 지 60년이 넘은, 본인이 알고 있는 동네의원에 날 끌고 갔다.
딱 1주일이 걸렸다. 무좀처럼 생긴 상처는 주사 한방과 습진 연고를 바르면서 깜쪽같이 사라졌다. 이제껏 수없이 만났던 의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허탈하고 씁쓸한 웃음을 뱉으며 나는 물었다. 불치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를 명의라고 부르지만, 오히려 치료하기 쉬운 환부라도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가 명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명의가 되기 위해선 치열한 관찰과 경험을 쌓았을 테고, 그런 노력을 통해 남들이 보지 못하는 통찰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K를 덮쳤던 건 인사 담당자였다. 신입사원 때부터 수차례 고충상담을 하며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고, 신뢰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이 자신의 성추행 빌미로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K는 성추행 사실을 입증하고 자신의 주장을 납득시키기 위해, 2년간 진정사건과 소송사건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리고 지리멸렬한 싸움 끝에 K는 이겼다.
사건 초기만 해도 직장 내 분위기는 K에 대한 동정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여론은 점차 싸늘해졌다. 그녀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들이 사내에 퍼졌던 것이다. 직장 동료들은 K를 만지기만 해도 다칠 수 있는 독버섯처럼 꺼렸다. K는 잠깐의 승리를 얻었으나 동시에 심각한 우울증도 얻었다. 정신과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했지만 증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나는 사무실에 방문한 여자가 K인 줄 미처 몰랐다. 여자는 K의 절친인 것처럼 행세했고, 지난밤 자살한 K가 남긴 유언을 지켜주고 싶다고 했다. 일부러 나를 알고 찾은 건 아닐 테지만, 아마도 K를 담당하던 지사와 거리가 먼 이곳에서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여자는 오늘 아침에 K가 안치된 영안실과 집을 들렀다 오는 중이라고 했다. 슬픔이 그득한 여자는 무거운 어깨를 들썩거렸다.
"K는 정말 심성이 고운 아이였어요. 얼마나 자상한지, 나중에 착한 사람과 결혼해서 좋은 엄마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 백화점에 취직했을 때도 정말 기뻐했죠. 열심히 일해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저축도 해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애에게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진 거예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죠? 그 애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요. 그 남자랑 직장 동료들에게 희생된 거예요."
"언제부턴가 K가 집 밖을 나오질 않았어요. 전화를 해도 잘 받질 않고요. K가 전에 그러더군요, 자기가 죽으면 제주도에 계신 부모님이 유족 보상금을 받게 해 달라고요. 그 사건 이후로 부모님과 전혀 연락도 하지 않고 살았다고 해요. 그런 일을 당한 뒤 정신병에 시달리는 모습을 도저히 보여드릴 수 없었데요. 그러니 스스로 목숨을 끊더라도 보상금으로 부모님이 먹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여자는 K의 이야기를 간신히 꺼내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빈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말할 때마다 K가 조금씩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여자의 감정은 점점 격해졌다. 그리고 여자는 K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자꾸 반복했다. 마치 그 부분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상담을 마친 후 나는 K의 사망을 알리기 위해 K의 요양 담당자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요양 담당자는 반신반의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오늘 아침에도 K와 주치의 문제로 통화를 했더랬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날 찾아왔던 여자가 사실은 K였다는 걸.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부조리한 심리극에 내가 참여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이야기는 K가 만든 연극 무대였고, 자신이 쓴 극본에 따라 메소드 연기를 한 것이다. 갑자기 섬뜩한 기운이 맴돌며 온몸에 털들이 쭈뼛해졌다. K가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K를 생각할 때마다 어떤 영화 속에서 가차 없이 목을 매달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조만간 K의 사망진단서와 유족급여 청구서가 내 앞으로 배달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한 동안 긴장과 염려 속에 살았다.
카프카의 시골의사로 그랬다. 그는 행정구역 내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공공의였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지만, 다른 의사들에 비해 낮은 봉급을 받았고, 위급 상황이 아닌데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비상벨에 자신부터 구제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날, 비상벨이 울리자 또다시 그는 시골길을 달려갔다. 텁텁한 연기로 가득 찬, 열기도 없이 차가워진 방 한편에 소년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멀쩡해 보였다. 시골의사는 이런 일을 겪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눈보라가 더욱 세차게 불었다.
발길을 돌리던 시골의사는 소년의 옆구리 쪽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손바닥만 한, 꽃처럼 생긴 분홍색 상처가 있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상처엔 벌레들이 꿈틀거렸다. "저를 구해 주실 수 있겠죠?" 소년은 울면서 시골의사에게 속삭였다. 과연 자신이 소년을 구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살아있지만 죽어가는 아이를 향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상처가 나쁘지 않으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그는 소년에게 말했다.
지난날 죽었지만 살아가는 K를 떠올렸다. K는 죽음을 향해 내달리던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었다. K는 죽은 척 연기를 하면서 자기 가족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자신이 살아갈 이유는 오직 사랑하는 가족뿐이라고, 그래서 당신의 사랑하는 딸로 언젠가 돌아가고 싶다고 말이다. 나는 그런 K를 정신이상으로 몰아세우며 두려워했다. 그녀의 곪은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고 겉으로만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한번 죽었지만 다시 살아가고 있는 K에게 곧 괜찮을 거야,라고 말이라도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생각했다.
* 카프카의 <시골의사> 참조
* 사진 출처: COPILOT DESIGNER
* 고의 또는 자해행위를 통해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K는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경우 가족인 부모가 유족보상금을 수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러한 선택으로 오히려 더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삶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