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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Jul 25. 2024

진실의 밧줄

실종자


주말 내 이불속에서 몸살을 끌어안고 끙끙 앓았다. 조제약 삼켜 한숨 자고 나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고 쨍한 한기가 느껴졌다. 찌뿌둥한 하늘을 가 번갯불처럼 온몸이 빠개다. 봉지 속에 눅눅 붕어빵처럼 손발이 찌부러졌고, 수분이 빠져나간 몸에선 소금에 절인 고등어 냄새가 났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했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잠깐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새벽 2시를 넘다. 창 밖의 세상은 온통 칠흑처럼 어두웠다.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둘러보니 휑한 동굴 속에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볼록렌즈가 검은 먹지를 태우고선 구멍 난 것처럼 마음 한 곳이 헛헛했다. 스마트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해 본다. '폭우로 한강 수위가 상승하고 있다', '북한에서 부양한 풍선 추정 물체가 포착되었다'는 안전안내 문자가 전부였다.


후터분한 공기가 내 주위를 맴돌았다. 배가 뒤집힌 바거북 한 마리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둥거리며 천천히 도태되고 있었다. 요컨대  불행이 닥칠 것 같다는 비관적 감상이었다. 자신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이 마뜩하진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것들은 나 자신을 향해 좀 더 필요한 게 아닐지, 자연 도태되고 있는 거북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절망의 골이 얼마나 깊을지 가늠했다. 


몸살에 걸린 채 참담해지는 이 묘한 기분은 K 때문일지 모른다. 중국교포 K는 얼마 전 건설현장에서 추락사고로 늑골 골절되어 산재 신청을 했다. 치료 경과는 매우 양호했 비록 한시적 통증이 남았괜찮아질 것이다. K는 십오 년 전 한국에 들어와 공사판을 돌며 일용할 삶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경제적인 문제부인과 이혼했다. 자식마저 성격으로 틀어져 남남처럼 연락 없이 지냈다.


K는 장해급여 청구 건으로 내게 자주 상담전화를 요청했지만 그의 사건은 이미 종결된 상태였다. 부지급 처분에 대해선 빨리 이의제기를 하라고 여러 차례 설명을 했으나 K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다만, 도무지 잠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내게 불만과 하소연을 할 뿐이다.  


K는 통증과 불면 증세로 얼마 전 주치의로부터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몽유병 환자처럼 밤중에 차도 위를 걷고 있었다고 했다. 주행하던 자동차 헤드라잇과 클락숀에 정신이 들지 않았더라면 벌써 죽었을 거라고, 그 순간 정말로 아찔했다고 했다. 무의식에 떠밀려서 어딘가로 향하던 자신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데 절망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K가 말했다.


K는  있어줄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정 그 사랑했던 가족이 보고 싶 것이다. K의 목소리가 울음에 잠기고 있을 때, 절망 수조관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 듯 했다. 물속에는 물고기 하나 없이 물고기밥만 부옇게 불어 터졌다. 하지만 K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선뜩 떠오르지 않았다. 어설프게 위로한답시고 꺼낸 말이 K를 절망에 빠뜨릴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나는 다소 건조하게 대답했다.  




카프카의 화부는 증기선의 화력을 조절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직속상관인 일등 기관사는 그를 게으르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모욕하고 부당하게 대우했다. 그래서 화부는 직접 선장을 찾아가 억울한 심정과 사정을 호소하려 했다. 자신의 처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몰랐지만 일단 선실에 갔고, 화부는 그간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나열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화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는 선실에서 쫓겨났다.   


화부는 단지 모욕과 부당함만 말하려던 게 아닐 것이다.  보이지 않게 제 속살을 찌르 고통에 대한 것, 그런 고통을 유발하는 가시의 정체를 밝히고, 가시 주변을 에워싼 다양한 조건과 환경에 대해 설명하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겪었던 고초에 대해 연민과 공감을 얻고 싶었다.


건설 잡부인 K나 화부처럼 난데없이 들이닥친 산업재해나 부당행위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생계를 더 이상 유지하못한 채 빈곤한 상태에 빠진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는 현실에서 매우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죽은 자의 집 청소>의 작가 말에 따르면 "가난과 외로움이 한 세트처럼 묶여있는 것 같다."라고 한다. 나 역시 붕괴사고 현장의 잔해 더미 밑에 가난과 고독 파묻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지금도 하염없이 구조의 손길을 구하고 있다.


가난과 고독이 절망 결합되어 비극적인 클리셰를 만들고 다. 그러한 클리셰는 물리적인 상처나 고통보다 우리 삶에 더 치명적다.  위태롭게 공중에 떠있는 전깃줄과 같다. 고압 전류에 감전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인데도 아무 조치 하지 않는 것, 위험한 상황에 아무도 선뜻 서지 않는 것, 무너진 일상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는 것, 이것들이 보았던 실의 일부이다.  

 

때때로 진실을 말하는 게 나는 정말 어렵다. 절망적인 진실을 에둘러 설명해도 노동자는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유독 가난하 고독한 에게만 불의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까닭에, 이런 진실에 대해 말하는 걸 꺼리는지 모른다. 그래서 전깃줄에 나란히 앉을 수는 없어도 K의 말을 들어주다. 수긍할 수 없 말이라도 끓지 않고 들어주는  마음 거리 줄이려는 것이다. 그래야 진심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아. 진심이 담겼다고 해서 문제가 적으로 해결되 않는다. 다만, 중요한 건 나도 언제든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자각하는 것이다.  


진실은 공중 높이 매달 밧줄이 아니라, 바닥 바로 위에 낮게 매달린 밧줄 위에 있다, 라고 카프카다. 편한 진실인해 누군가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넘어진 이에게 연민과 공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진심을 담아 그의 말을 듣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진실의 불편함이 조금은 상쇄되지 않을까 다.  



* 카프카의 <실종자> 참조

* 카프카의 팔전판 노트(1918년 봄) 문구 인용

* 사진출처: COPILOT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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